넷플릭스 시리즈 러브 온 더 스펙트럼
서점을 운영하면서 나와 같은 종족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독서모임이나 글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강한 종족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 종족들을 손님 친구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손님 친구들과 나는 마치 할리갈리 하듯 대화를 나눌 때가 많다. 하나씩 카드를 꺼내는 것처럼 요즘 보는 책, 영화, 웹진,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문화콘텐츠를 서로 꺼내다가 최대치의 접점에 이르렀을 때, 서로가 같은 타이밍으로 땡-하고 종을 울린다. 손님 친구들과의 이런 즐거운 티키타카에서 넷플릭스에 대한 이야기는 쉽게 빠지지 않는 빈번 대명사다.
올해 독서모임을 진행한 책 중 사계절출판사에서 출판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라는 책이 있다. 천자오루라는 대만의 작가가 쓴 책으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야기를 다각도로 다룬 책이다. 천자 오루는 대만의 다양한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대만판 도가니라고 하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하기도 했던 진실과 진심에 가까이 서있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를 읽으며 사랑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실은 쉽게 사랑을 하고 편하게 사랑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어떤 장애를 어떤 정도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사랑과 결혼 그리고 2세를 계획한다는 사실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책이 나를 가장 많이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점은 내가 어느 편에 서야 될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본인의 자궁이 적출되는 불임수술을 받는 모습은 너무 불쾌했지만, 쉽게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놀이로 알기도 하는 그들을 감당하는 부모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또 장애인에게 성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마저 알쏭달쏭해서 거의 울 것 같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나락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어요 (소곤소곤)
한 손님 친구가 사랑에 대한 좋은 넷플릭스 시리즈가 있다고 내게 알려준 것은 책을 읽고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노트 한편에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라고 적어놓았던 나는 5화로 이어지는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을 집과 서점을 오가며 한 편씩 천천히 봤다.
'사랑'이라는 정보만 있었던 영화는 첫 편을 보고 나서야 제목을 이해하게 됐는데, 러브 뒤에 붙는 온 더 스펙트럼이라는 영어가 자폐를 나타내는 영어라고 한다. 자폐는 Autism인 줄만 알았는데 on the spectrum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자폐란 하나의 행동이나 증상으로 규정할 수 없어 하나의 스펙트럼 안에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뜻에서 on the spectrum이라고 표현한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즉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은 자폐를 가진 젊은이들이 사랑을 찾고 만나는 과정의 내용이었다. 관계 전문가가 그들과 대화를 통해 사랑을 이룰 수 있게 돕기도 하고, 그들 스스로 기준의 사랑으로 짝을 찾으려 나서기도 한다. 호주가 배경으로 한, 간단히 말하자면 호주 연애 리얼리티쇼라고 보면 좋겠다.
내가 이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 반한 이유는 '마이클'이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사랑을 찾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Oh yes-"라고 답한다. 연애도 집도 출산도 모두 포기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희망적이고 당찬 대답인가. '마이클'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는 '매디'. 매디와 매디의 가족들이 너무 멋졌는데, 대화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서 예상치못한 순간에 떠뜨리는 유머때문이었다. 엄마와 아빠를 노인이나 늙은이라고 말하는 매디는 장난꾸러기같고 매디를 지켜보며 같이 웃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못해 숭고할 정도다.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 출연하는 사랑을 찾는 젊은이들 주변의 인물들도 따뜻했다. 이미 결혼을 하고 서로 진심 어린 사랑을 나누고, 오랜 시간 잘 지내고 있는 커플들이 따뜻했고, 자폐를 가진 아이의 사랑을 응원하는 부모님이 따뜻했고, 친구의 사랑을 응원하는 친구의 우정이 따뜻했다. 온 마음을 다해 그들이 사랑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 차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며 보게 되었다.
가끔 삶이 고구마처럼 팍팍하진 않다고 알려주는 따뜻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 선물처럼 다가온 영상이 바로 이 <러브 온 더 스펙트럼>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들>이라는 책을 보고 나서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역시 사랑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므로.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 시도만으로 얼마나 삶이 아름다워지는지 <러브 온 더 스펙트럼>에 나오는 친구들이 사랑을 대하며 변하는 눈빛과 몸짓을 통해 나는 배울 수 있었다.
아래링크를 통해 바로 시청가능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