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라는 것은 우리와 항상 애증의 관계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분들이라면 월요일 아침 8시 출근길 지하철을 가득 메우는 익숙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을 잘 아실 것입니다. 주말의 단꿈에서 아직 다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수많은 인파 속에 몸을 맡긴 채 회사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두 손으로 핸드폰을 볼 여유조차 확보되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밀집된 공간에서 다들 머리 위에 말풍선을 달고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생각을 굴립니다. 몽롱한 사람들로 가득한 열차는 침묵 속에서 홀로 바쁘게 움직이죠. 운 좋게 자리에 앉아 가는 사람들은 고개를 90도로 떨구고 기절한 듯이 쪽잠을 청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해 주는 우리 삶의 단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월요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정말 일을 안 하면 행복할까요?
요즘은 다들 셔터맨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들 하죠. 그렇다면 정말 일을 안 하면 행복할까요? 하지만 의외로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으며 여유로운 일상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사람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인류학자 Margaret Mead*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정년이 지나면 은퇴를 하지만 남성들은 죽는다’라는 말을 했지요. 그 이유는 두 가지 인데요, 남성들은 일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해 여성들보다 일찍 죽을 확률이 높은 탓도 있고, 일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지루함과 절망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아무리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싫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을 하면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리죠. Margaret Mead 가 이 말을 남긴 1960년대 당시 여성의 정규직 고용률이 30%에 불과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오늘날에는 여성들에게도 같은 내용이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이란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일은 업무의 난이도나 그것이 주는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기 때문이죠. 인지심리학의 아버지 아론 벡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생각에는 세 가지 뿌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는 무능하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가치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핵심 믿음 세 가지는 놀랍게도 일을 통해서 모두 충족 받을 수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 유능함을 느끼고, 사람들이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우리가 자발적 워커홀릭이 되어서 번아웃이 오는 지경까지 일을 하게 되는 데에는 일이 우리의 자존감을 올려주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직장인 절반이 자발적 워커홀릭인 사회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성과를 중심으로 자존감이 형성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어려서는 학업 성취가, 어른이 되어서는 회사에서의 실적이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인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가 성취와 관계없이 가치 있다고 느끼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직장인 2명 중 1명이 스스로를 자발적 워커홀릭이라고 말하는 통계 결과*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자존감을 일의 성취의 영역 하나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위협받는 일을 겪게 될지 모릅니다.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서 받는 피드백은 언제나 긍정적일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존재 가치가 오로지 일의 성과로만 평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적 피드백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자존감도 바닥을 곤두박질 치게 됩니다.
자존감을 온전히 일에서만 찾는다면 마음이 위험할 수 있다.
자존감이 손상되는 것은 심리적으로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필요 하다면 공격적으로 돌변하기까지 합니다. 분노에 관한 논문들에 따르면, 부서지기 쉬운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존감이 급격하게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상대방을 비난한다고 합니다.*자존감이 낮아지면 자기 조절 능력도 낮아지게 되고, 섣부르게 행동하게 되며 성장에 도움이 되는 피드백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수용하는 힘을 가진 사람은 비판적인 피드백에 대해서도 덜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서도 더 객관적입니다.* 마음챙김에서는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되 감정에 휩쓸리지 말라고 합니다. 윗빠사나 명상을 할 때는 머릿속에 돌아가는 생각을 바라보되 생각에 휩쓸리지 않으라고 하죠. 수용전념치료에서는 고통을 피하지 말고 경험하되 고통에 휩쓸리지 말라고 합니다. (쉽지 않죠 ) 이것은 상황에 완전하게 몰입되지 않고 관조적으로 바라볼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감정을 차단하는 것과 다른 일입니다. 온전히 감정을 경험하되 그것을 흘려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자존감을 올려주는 취미가 있나요?
자존감은 다차원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도는 조금 다를지언정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는 각각이 채워주는 자존감을 느낍니다. 가족, 친구, 일, 운동, 취미와 같은 영역 말이죠. 설령 일에서 성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내가 친구들에게 좋은 동료고, 가족들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다차원에서 자존감을 골고루 경험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쪽 자존감이 내려가는 일을 겪더라도 감정이 요동치지 않고 조금은 차분하게 그 상황을 소화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과 관련된 성취와는 완전하게 무관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거나, 취미생활을 즐겨보세요. 업무적인 성취 외에도 다른 영역에서 훌륭한 내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업무에서 오는 정신적 타격을 이겨내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유명 인사 중에는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코로나 이후 주짓수에 빠졌는데, 최근에는 대회에 출전해서 메달까지 땄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고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좋아했는데, 2020년에는 아프리카 돕기 자선 테니스 경기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일 외적으로 여러분의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삶에서 일을 지워버리고 나면 남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이번 주말에는 일이 아닌 영역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친구와 만남도 좋고, 운동도 좋고, 모임을 만들어서 이끌어 보는 것도 좋아요. 일 외적으로 내가 잘하는 것을 계속해서 경험함으로써 자존감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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