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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Jul 23. 2020

헝거

허기, 부끄러움, 몸부림 - 보고 듣고 말하기 #19

원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끼니를 챙기는 일을 중요시 하지는 않는다. 식사야 음식이 있을 때, 상황에 따라 해결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허기를 느낄 정도까지 식사를 거르지는 않는다.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해 커피만 두어 잔 마시고 퇴근하여 저녁을 챙겨먹는 정도이다. 배고픔이 익숙하지 않기에, 익숙해질 일이 없기에 두 끼의 허기에 조바심을 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입에 들어가는 곡기를 끊는 일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가 내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몸부림이다. 단식은 목소리를 빼앗기고 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있어, 생을 걸고 싸우는 최후의 수단이다. 걸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몸 밖에 없기에. 단식은 그런 이들에게 있어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제 몫을 훔쳐간 자들을 향해 내뱉는 단말마의 비명이다. 헝거는 허기를 자처한 이에 관한 영화이다. 마가릿 대처가 총리이던 1980년 무렵의 북아일랜드는 혼돈의 한 가운데에 있었다. 16세기 중순 시작된 식민통치는 20세기가지 이어졌고, 수십 차례의 투쟁 끝에 1949년 아일랜드는 독립을 거머쥐었다. 북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의 지배를 받아야 했지만 말이다. 


헝거는 북아일랜드 교도소에 수감된 아일랜드 공화주의자 수감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정치범의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샤워와 이발을 거부한다. 그들은 분뇨와 음식물 쓰레기를 벽에 바르고, 옷을 입기 거부한다. 자신들이 단순한 범법자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운동가임을 인정받기 위해 말이다. 맨몸인 그들은 곤봉과 방패로 무장한 경찰병력을 이길 수 없다. 구타와 모욕이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와중에도 그들은 굴복하지 않는다. 얻어맞을지언정 속수무책으로 무릎 꿇지는 않는다.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은 단식을 결정한다. 보비는 단식 직전 면회실에서 도미닉 신부와 대화를 나눈다.



영화 <헝거> 스틸컷

"저는 제 삶을 존중하고 자유를 갈망해요.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 흔들리지 않을거에요. 제가 옳다고 믿는 거에 목숨을 걸 겁니다."

"그래서 나를 불렀나? 자신에 대한 의심 때문에? 확신이 없었던 건가?"

"네. 인간이니까요."

"내가 답을 준 건가?"



영화는 후반부 이십분 동안 수감자들의 지도자 보비 샌즈의 육십육일 간의 단식을 느린 호흡으로 그려낸다. 관객은 보비가 허기로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그의 육신은 점차 말라간다. 뼈와 혈관의 윤곽이 피부 위에 도드라지고, 욕창과 각혈이 진행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한 생이 사그라드는 모습 앞에 조롱과 경멸을 내뱉는 이들은 없다. 공화주의자들과 대치해온 얼스터 민병대 출신의 교도소 직원은, 욕조에서 일어나다 기절한 보비 샌즈를 안고 침대로 옮긴다. 나체인 보비의 몸에 모포를 둘러준 채 말이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보비는 얇은 이불의 무게조차 감당할 수 없어, 그의 몸 위에는 이불을 지지하기 위한 철골 지지대가 놓인다. 


몇 달 전 한 유력 정치인의 단식이 큰 이슈가 되었었다. 결연한 표정과 목소리로 단식을 선언했던 그는 팔일 간 단식을 펼쳤고, 그의 행동에는 나름의 진정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그 정치인의 단식 앞에 눈물 흘린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몇 년 전에 본 장면이 떠오른다. 자식을 잃은 이들 앞에, 자식을 잃은 억울함을 호소하고자 단식을 하던 이들 앞에서, 음식을 쌓아놓고 먹으며 조롱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생을 걸고 싸우는 이들을 너무도 쉽게 비웃고는 한다. 자신들은 결코 허기를 겪을 일이 없으리라 믿기에. 배고픔보다 견디기 힘든 모욕을 받는 일이 없으리라 믿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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