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는 바깥에서 온다. 닫힌 방문과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창틀 너머로 들려오는 속삭임들. 공포는 안쪽에 숨어있다. 밀폐된 공간 속 그늘진 곳에 악몽은 숨죽이고 있다.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깥도 안쪽도 아닌 내 안에 자리하고 있다. 광기와 의심에 휩싸일 때, 우리는 비명을 내지른다. 목이 쉴 정도로 공포를 토해내고 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저 으스스한 그림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샤이닝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한 소설가, 잭 토랜스는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길을 나선다. 카메라는 잭의 노란색 자동차의 뒤를 좇는 장면으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잭은 겨울 동안 오버룩 호텔 관리인으로 취직한다. 겨울은 혹독하고 호텔을 찾는 손님의 발길은 끊겨 잭의 가족은 완벽히 고립된다. 새로운 소설을 구상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했던 잭에게는 구미가 맞는 제안이다. 오버룩 호텔은 잭과 웬디, 그들의 아들 대니를 천천히 잠식해간다. 오버룩 호텔은 가부장제, 1980년대와 1920년대, 더 넓게 보면 미국 전체를 상징한다. 잭의 가족만이 남은 호텔은 가부장제의 재현과 붕괴를 차례로 보여준다. 근무 첫 날 잭은 드넓은 호텔을 자유로이 돌아다닌다. 호텔은 잭의 것이다. 모든 가정이 남성 가장의 것인 것처럼. 근무 첫날 웬디와 대니는 산책 겸 호텔 앞에 위치한 미로로 들어가고, 호텔을 어슬렁거리던 잭은 미로의 조감도를 내려다본다. 가장인 잭은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하에서 규칙을 추가하고, 웬디와 대니에게 폭력을 가한다. 눈이 쌓이고 고립감이 깊어지면서 잭은 미쳐간다.
영화 <샤이닝> 스틸컷
영화에서 잭이 등장하는 장면의 대부분의 오버룩 호텔이다. 관리인 면접을 끝낸 잭은 셜리와 대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잭이 등장하는 다음 장면은 호텔로 향하는 자동차 안이다. 그 이후로 잭은 호텔 안을 벗어나지 않는다. 망령과 환상에 시달리는 아들 대니를 위해 호텔을 떠나자는 웬디의 말에 잭은 광분한다. 분노에 찬 잭은 호텔 라운지로 내려오고, 그곳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파티 참석자들의 모습은 1920년대의 모습이다. 백인이 미국을 지배하던 시절이며, 미국은 끝없는 번영과 영광 누릴 거라고 믿던 시대인 1920년대는 1980년대가 갈망하던 바로 그 전통의 시대이다. 그 안에서 잭은 편안함을 느낀다. 바텐더와 웨이터는 그를 극진히 대접한다. 파티에서 웨이터는 잭에게 술을 쏟고, 웨이터는 사과를 하며 잭을 화장실로 안내한다. 잭은 그 웨이터가 자신처럼 한겨울에 호텔 관리인으로 근무하다 일가족을 참살하고 자살한 그래디임을 알아본다. 오버룩 호텔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한 적 없냐고 묻는 잭에게, 그래디는 답한다. 이곳의 관리인은 늘 당신이었다고. 잭은 망령의 또 다른 얼굴이 되었다.
오버룩 호텔이 세워진 곳은 인디언들의 무덤이다.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건국된 미국처럼, 오버룩 호텔은 인디언들의 유해 위에 세워졌다. 조국의 이름으로 학살된 인디언들은 웬디와 대니 같은 제국주의-가부장제의 희생양이다. 감독은 잭을 통해 미국이란 제국의 폭력과 광기를 폭로한다. 영화 끝 무렵 마침내 잭은 호텔을 벗어나 미로로 들어간다. 도끼를 든 채 대니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대니는 잭의 발자국을 되밟으며 미로를 빠져 나오고, 잭은 얼어 죽는다. 자신의 공간인 호텔을 벗어난 결과이다. 감독은 미로의 시작은 보여주지만 끝은 보여주지 않는다. 미로에 출구는 없다.
Overlook Hotel, July 4th Ball, 1921 - The Shining
웬디와 대니는 살아남지만, 그들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고는 할 수 없다. 영화는 오버룩 호텔의 연회장의 모습이 담긴 흑백사진을 보여주며 끝난다. 1921년에 찍혔다고 적힌 사진의 중앙에는 잭이 있다. 망령은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란 예언이다. 잭은 죽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웬디와 대니는 여전히 호텔에 갇혀있다. 망령은 끊임없이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바깥에도 안쪽에도, 우리 안에도 자리한다. 그들은 좀처럼 떠나는 법이 없다. 미로에는 출구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