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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Jul 23. 2020

트럼보

펜을 쥔 인간 - 보고 듣고 말하기 #20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허망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때에 따라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 주로 권력자의 곁에 섰을 때. 펜대는 약하다. 펜을 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이다. 유약한 인간이 펜을 잡았을 때, 제 목에 겨눠질 칼날이 무서워 그 펜으로 권력자를 찬미할 때 펜은 언제나 칼보다 강하다. 태평양 전쟁 말엽 조선의 건아들은 자랑스러운 황국신민으로서 전선으로 나아가 덴노를 위해 산화하라 쓴 숱한 문인들도, 한때는 명민하고 총명한 작가들이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허무한 까닭은, 그 명제가 사실이 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대체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실이 된다는 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드물긴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진실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는 이들과 마주한다. 체제를 찬양하라 목에 칼을 겨누고 눈 앞에 총부리를 들이대도, 한사코 쓰고자 하는 글만을 쓰는 이들이 있다. 달튼 트럼보는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20세기 초, 대공황과 제2차세계대전이 지나간 미국은 전례없는 호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전쟁은 비극이었지만, 군수산업의 발전은 경제적 이윤을 창출했다. 헐리우드 역시 호황의 혜택을 누렸다. 달튼 트럼보는 헐리우드가 총애하는 시나리오 작가였다. 사회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미국 공산당 당원이기도 했다. 1940년대 온 유럽이 전화에 휩싸였을 때 소련은 미국의 적이 아닌 동맹국이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공산당 당원은 내부의 적으로 간주되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이던 조지프 매카시는 사회적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했다. 사상검증의 칼날은 모두에게로 향했다. 헐리우드와 트럼보 역시 칼날의 궤적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반미활동 조사위원회는 트럼보와 동료 시나리오 작가들을 워싱턴 청문회로 소환한다. 


영화 <트럼보> 스틸컷

"트럼보 씨 다음 질문들에 ‘네, 아니오’로 대답하세요."

"답할 마음이 들면 그렇게 하죠. 난 내 뜻대로 대답할 겁니다. ‘네, 아니오’로만 대답하는 사람은 바보 아니면 노예 밖에 없죠."


트럼보는 답변을 거부하게 될 경우 의회모독죄로 기소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진술을 거부한다. 그의 동료 알런 허드는 한 술 더 떠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있냐고 묻는 조사관에게 주치의와 상담한 뒤 답하겠다고 말한다. 수술로 양심을 제거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말이다. 그들은 예상한대로 곤경에 빠진다. 동료들은 차례로 체제 앞에 순응하고, 영화 제작사들은 각본을 받아주지 않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사회는 히스테리적인 반공주의에 사로잡히게 된다. 트럼보는 결국 그 해 6월 수감된다. 오랜 친구는 그가 옥중에 있을 때, 그가 공산당의 주요 간부였다고 허위 증언한다. 1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나오자 그의 앞에 놓인 건 생활고였다. 먹고 살기 위해 그는 B급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에서 수십 개의 시나리오를 쓰고 고친다. 11개의 가명으로 그의 작품들이 영화화 되었지만 낮은 고료로 생활은 늘 여의치 않다. 어려움 속에서도 달튼 트럼보는 펜을 놓기를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본명으로 스파르타쿠스 각본을 쓴 그는 재기에 성공한다. 1970년 전미작가조합 로렐상 시상식에서 트럼보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말한다.


영화 <트럼보> 스틸컷

블랙리스트는 악마의 시절이었습니다. 악마의 손길이 닿지 않고서 그 시기를 버텨낸 사람은 없죠. 미약한 개인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중략) 허나 그 어둡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물론 가끔씩 떠올려야겠지만 영웅이나 악당을 찾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없었기 때문이죠. 희생자들만이 었었을 뿐이죠.


지난 정권 우리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마주했다. 권력이 예술을 통제하려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목도했다. 펜과 붓을 쥔 이들은 시류에 영합하기도 했고, 저항하기도 하였다. 그 끝에는 촛불이 있었다. 권력은 언젠가 끝난다. 바뀐 권력 역시 별다를 바 없을 때가 많다는 게 문제이지만. 촛불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정권에서 대통령 측근 비리가 터져나오자, 어떤 펜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스스로를 검증받아야 할 권력이 아닌, 부당한 권력의 희생자로 위치시키면서 말이다. 지난 정권을 격렬히 비판하고 저항하였던 어떤 펜은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정권 보호의 선두에 서기도 하였다. 


펜은 약하다. 펜을 쥔 인간이 언제나 약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펜을 쥔 인간이 권력이 윽박지르기 전에 먼저 순응하기도 한다. 나는 당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며. 권력은 언제나 펜을 종으로 부리고자 하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다. 펜은 늘 권력의 시녀로 기능한다. 하지만 언제나 ‘네, 아니오’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이들은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의 명맥이 끊기지 않은 까닭은 그런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트럼보의 말처럼 영웅이나 악당을 찾을 필요는 없다. 다만 누가 ‘네, 아니오’를 강요했는지는 기억해야 한다. 펜대가 꺾이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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