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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정의 기록 Jan 01. 2024

비바, 제인

Jane is who?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다닌 회사는 성수동에 위치한 스타트업이었다. 설립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그러나 여전히 스타트업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의 회사였다. 입사 이튿날 대표는 내게 특정 사업과 관련된 사례를 모아오라는 업무를 주었다. 그다음 날 대표는 내가 내민 보고서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어디서 자료를 검색했냐고 물었다. 당당하게 네이버라고 답하는 나를 안쓰럽게 보던 그는 친절하게도, 검색은 구글에서 하는 게 기본이라고 일러주었다. 대표는 그 후에도 비슷한 업무를 여러 차례 시켰고, 딱 한 번 잊지 말라는 듯 이전에 한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검색은 구글에서 꼭 하세요. 아, 물론 영어로요.”라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오면 곧바로 받지 않고 검색창에 번호를 입력해 본다. 물론 구글에서. 빈칸은 어떤 것을 입력하든 무언가를 내뱉는다. 숫자의 조합 역시 마찬가지다. 그 숫자는 기관의 번호일 때도, 스팸 알림 사이트에 등록된 영업 관련 번호일 때도, 아직 아무런 정보와도 연관되지 않은 숫자에 불과할 때도 있다. 그러니까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는 건 딱 두 가지 경우 뿐이다. 검증된 곳의 번호이거나,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는 번호일 때. 예외는 없다.


우리는 경험에 앞서 검색한다. 그건 현대인으로서의 존재 양식이다. 누구든 빈칸에 알고 싶은 것을 검색하지만, 대다수의 이들은 그 빈칸에 자신도 내던져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겠는가? 누가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불안하다. 때때로 나의 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검색해 보기도 한다. 과거 나나 타인이 나 자신에 대해 남긴 정보들이 검색되는 것이 신경 쓰인다. 무방비하게 노출된 것만 같은 마음으로 검색 결과를 살피다가, 나에 대해 검색되는 정보가 더 늘어나지 않았음에 안심한다. 왜 그러는 걸까? 대체 누가 나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나를 궁금해할 타인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내가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그러니까 무언가, 알지 못하는 것들, 타인이나 외부, 그냥 숫자의 조합 같은 것마저도. 나의 불안은 타인 역시 나와 같을 것이라 가정에서 온다. 그들은 파헤칠 거고, 헤집을 거고, 오해할 것이며 단정할 것이다. <비바, 제인>의 제인 영이 당한 것처럼.


1998년 9월 9일, 미국 의회에는 모니카 르윈스키-빌 클린턴 스캔들에 대한 수사보고서가 제출되었다. 이틀 뒤인 9월 11일에는 해당 보고서가 인터넷에 공개되었고, 당시 미국 성인 인구의 12%에 해당하는 2천만 명이 보고서를 다운받고자 접속하였다. <비바, 제인>의 저자 개브리얼 제빈은 98년도 화이트 하우스를 둘러싼 스캔들에 관하여, 인터뷰는 물론 소설 속에서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비바, 제인>이 출간된 2017년은 미국의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성희롱·성추행 경험을 고백하면서 미투 운동이 재점화 된 시기였다. 모니카 르윈스키가 스캔들로 악명을 얻은 지 19년이 지난 뒤, 가브리엘 제빈은 <비바, 제인>에서 다섯 명의 여자를 무대 위에 올린다. 이건 그 이야기라는 걸 숨기지 않고 말이다.


비바제인, 개브리얼 제빈 ⓒ문학동네

다섯 개의 챕터는 아비바 그로스먼-에런 레빈 스캔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이들의 입을 빌려 진행된다. 개브리얼 제빈은 유창한 다중언어 이용자처럼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이야기를 쏟아내면서도 빠른 속도감을 잃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각과 입장에서 쓰인, 이야기가 쌓일 때마다, 독자는 실체를 파악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빈칸에 검색어를 입력할 때마다 새로운 정보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하나의 단어에서 시작한 구글링이 그와 연관된 항목들에 대한 검색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레이털그로스먼 #제인영 #루비영 #엠베스레빈”이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다 보면 아비바 그로스먼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은 다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잘 쓰인 소설이 으레 그렇듯 쓰인 것은 쓰이지 않은 것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잊은 채.


독자는 마지막 챕터에서 읽는 경험이 아닌, 되는 경험을 겪는다. 이인칭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독자는 아비바가 내린 선택을 수행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아는 채로 검색이 아닌 경험으로 한 번 더 이야기를 진행하여야만 한다. 우리는 플레이어고 아비바 그로스먼은 아바타이다. 정말 그러한가? 이 이야기를 플레어로서만 읽을 수 없는 이들은? 예컨대 미투 운동의 당사자들. 구글링 될 각오를 무릎쓰고 경험을 나눈 이들. 그들에게 아비바 그로스먼은 플레이어다. 경험은 너와 나를 우리로 엮어낸다. 비약이다. 그러나 때로는 비약만이 경험하지 않은 생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인정하게 한다.


내게 모니카 르윈스키는 25년 동안 1998년도 스캔들의 주인공일 뿐이었다. 구글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상 가장 먼저 나오는 사진은 빌 클린턴과 찍은 사진이다. 마치 그가 다른 누구겠냐고 되묻는 것처럼. 스캔들 이후 그는 여러 활동을 하였다. 1998년의 스캔들과 연관된 행보도, 무관해 보이는 것도 있다. 스캔들에 대한 인터뷰에 응하거나, 자서전을 쓰기도, 사업을 하고 대학원을 다니기도 하였다. 사이버 불링에 대한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스캔들을 다룬 드라마를 공동으로 연출하였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 시절에만 머물러 있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변화하고, 성장하고, 실수하고, 또 실수하고, 어떤 면에서는 조금 나아지기도, 다른 면은 조금 더 별로인 채로 나이 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멈춰있는 인식과는 별개로, 여전히 자기 자신인 채로 여러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투표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쓰고 나온 제인이 그러한 것처럼, 제인이 아비바 그로스먼으로만 머무르지 않은 것처럼.


구글에서 인물을 검색하였을 때 보통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위키피디아 문서 내용인데, 검색한 이의 언어에 따라 내용이 상이하다. 국가나 문화에 따라 관심의 정도가 다를 테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모니카 르윈스키에 대한 한국어와 영어 위키피디아의 첫 문장은 각각 아래와 같다.


“모니카 사밀레 르윈스키 (영어: Monica Samille Lewinsky, 1973년 7월 23일~)는 미국의 백악관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중 당시 대통령 빌 클린턴과의 성적 관계로 유명해진 여성이다.”

“Monica Samille Lewinsky (born July 23, 1973)[1] is an American activist and writer.”


그러니까 검색은 구글에서, 물론 영어로 하기를 추천한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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