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그 시절 냄새를 맡는다.
3년 전 여름으로 기억한다. 나는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매일같이 이센스에 매여있었다. 술에 취해 놀부부대찌개 건물 1층에 주저앉아 핸드폰 스피커로 이 노래를 몇 번이고 계속 들었다. 당연히 담배도 같이 태웠다. 그것이야 말로 “아무 데나 앉아 담배 한 대 펴.”라고 이야기한 래퍼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여름밤엔 비행을 듣는다. 목 언저리엔 땀이 말라서 끈적거리지만, 그래도 밤공기가 못다 한 이야기를 토해낼 만큼은 홀가분한 날엔 비행을 듣는다.
당시엔 같이 술잔을 들어줄 친구가 있었다거나 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3년 전 그 날들에 너무도 완벽하게 혼자였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그 이후에 내 삶에 등장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당시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였다고, 생각을 한다. 일부러 면식이 있는 사람은 거의 만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성북천을 뛰고, 오후에는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저녁에는 혼자 술을 마시고 아무 데나 앉아서 담배를 폈다. 어쩌다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벤치에 앉아있는 내게 말을 걸어오는 종교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선량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속으로 ‘좆이나 까잡숴.’하고 킬킬대는 게 나름의 재미였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술을 많이 마셨다. 축 처진 몸으로 내가 통제되지 않을 적에야 비로소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한껏 파괴하는 것도 내 뜻대로 이뤄진다면 나름대로 즐거움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취한 날이면 잘 모르는 사람과 함께 무의미성과 희극성에 몸을 밀어 넣었다. 그렇지도 못한 날이면 몇 시간이고 비행의 노랫말과 함께 담배연기를 밤공기에 대고 흘려보냈다. 비행을 틀어놓으면 누군가가 내 얘기를 잠자코 듣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나 무기력하고 염세적인 가사가 나를 삶에 매어두었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개 같은 자기 계발서부터 해서 책에서 길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젠장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따위의 책이 얼마나 역겨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야 내가 많이 변했냐?”라고 묻는 한 마디에 코를 꿰였다. 반나절 비행 후에 도착할 그곳을 그릴 수 있었다. 정말이지, 날씨도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시 근황으로.
나는 “잘 지내니?” 연락 오는 사람들에게, “먼저 잘 지낸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작업 정의가 필요할 것 같아.”라고 얘기할 정도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요즘 듣는 음악이라면, Nina Simone의 Sinnerman과 Billie Eilish의 All the good girls go to hell 정도. 별 다른 의미는 없고 루치페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이라 그렇다. 요즘의 내가 그리는 반나절 비행 후에 도착할 그곳의 모습 같은 이야기들, 뭐 대충 짜릿한 자본주의쯤 되려나. 그런데 그런 것들 전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잘 모르겠고, 옛날 얘기나 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싶다. 간만에 사운드 클라우드를 켜고 E SENS의 비행을 듣는다. 그리고 이 글을 적었다. 여전히 언제나 전주가 시작되자마자 그 시절 냄새를 맡는다. 뭐 그리 많이 변했나 싶네.
아, 물론 글에 익숙한 가식이 묻어난다. 근데 그걸 누가 알아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