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뜨거움과 만듦새

by 취생몽사

올해 들어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어제 본 <세상을 바꾼 변호인>까지 해서 페미니즘 서사 내지 페미니즘을 작품의 주요 주제의식으로 다룬 영화를 세 편 정도 보았다. <캡틴 마블>과 <알라딘>이 그랬다.

<캡틴 마블>은 곱씹을수록 개별 영화로 뭔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다. 마블의 차세대 히어로들이 이따위로 납작한 인물이라면 굳이 볼 이유가 뭔가. <알라딘>의 멍청한 공주 자스민도 그랬다. 그나마 제일 나았던 것이 <세상을 바꾼 변호인>인데, 역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라 할 법정 장면에서, 긴즈버그의 변론은 법리와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고, 솔직히 설득력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짜증스러운 것이라면, 영화들이 전부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인물의 매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다들 알다시피 <세상을 바꾼 변호인>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전기 영화다. 하버드 로스쿨 내내 1등, 콜롬비아 로스쿨도 공동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자, 지금도 연방 대법관 자리에 있는 사람 아닌가. 나는 ‘왜 전기 영화가 주제의식 따위나 부각하겠다고, 그녀의 능력을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와 비슷한 구도는 앞서 언급한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광속 엔진 머금은 인간이고, 여러 별을 돌아다니며 우주 방위 신경 쓰는 캡틴 마블이, 그 자아의 각성과 정립에 대해 별 고민도 하지 않는 걸 보고 있으면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여성의 성장 서사에는 페미니즘적 각성 외에 다른 것들이 차지할 여력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자스민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술탄인 아버지가 리듬이나 타는 동안, 지도 펴놓고 이방인에 대해 조사하는 현명하고 준비된 지도자 아닌가? 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다른 모습들(“배고픈 아이들이 있다고? 그럼 빵집을 털어서 구휼하자.”라거나, “술탄은 바뀌었지만 군권 장악은 올드 타임 세이크로 극복하자.”)은 그녀를 그냥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나는 무슨 이러한 여성 empowering 서사 전반이 구리다는 게 아니다. 억압된 사회 속 여성 관객들에게 자존감을 제공하는 문화적 토대 어쩌구 뭐 그런 말도 납득은 간다. 그렇다고 해서 <베테랑>이나 <검사외전>같은 영화에 흥미가 없던 나 같은 사람이, <걸캅스>같은 영화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근우는 제발 트럼프 재선을 위한 세계인위원회 한국 지부장에 출마하길 바란다. 에휴 시발 <국제시장>이나 <명량>이었으면, 이런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반추해보면 <26년>이나 <부러진 화살>쯤 되는 영화에는 이런 얘기를 좀 했다. 근데 요즘은 영화의 만듦새에 대한 지적을 하면, “그래서 이 영화가 뜨겁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역질문을 받는다.

“아뇨, 넵... 시팔 존나 뜨겁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