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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이격거리

웃음과 공포 사이에서 역류하는 폭력

by 취생몽사

 비평을 하는 이들은 항상 작품과 비평가 본인과의 거리를 중요시한다고 알고 있다. 작품을 건성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면, 작품과 비평가는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비평가의 이격거리 정도로 이야기해야 할까? 봉준호는 나홍진처럼 서사를 구성하지 않는다. 봉테일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그의 손길로 다듬어낸다. 영화를 두고 많은 비평에서 공통적으로 카프카와 계급 우화를 이야기한 것을 떠올려보자. <기생충>은 명징한 서사와 문제의식으로 비평가들에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이유가 비평에 동의하기 위함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비평가가 아닌 나는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즐기며, 영화에 투영되는 서로의 모습을 더욱 이해하는 시간을 즐긴다. 그런 측면이라면 <기생충>은 굉장히 막막한 영화였다. 누구와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내게는 그 모든 비평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도무지 떨쳐지지 않는 섬뜩함이 남아있었다. 영화의 잔상이 다음 날까지 남아서, 하루 종일 무기력하게 보내야만 했다.
 어찌어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보니, 그리고 내 섬뜩함의 원인을 더듬어보니 아무래도 문제는 거리인 것 같다. 맨 처음 비평가와 작품의 이격거리를 이야기했는데, 모두가 비평가처럼 영화를 볼 수는 없는 법이기에 다수의 관객에게 <기생충>은 나의 삶 어딘가에 놓인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내 벗들은 각자 섬뜩함과 불안함, 혐오와 분노,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지 모른다. 나 역시 말을 함에 있어 조심스럽다. 친구들이 어떻게 영화를 봤는지, 그래서 어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었는지를 묻기란 어려운 일이다.


 요즘 부쩍 생계가 고민인지라,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적 책임감인가 싶은 무엇때문에, 나는 기택과의 거리가 유난히 가깝게 느껴졌다. 영화 종반부 역류하는 폭력 전에, 박사장의 언행에 자존심이 구겨지는 그의 표정이나 가난의 냄새가 폭로되자 조용히 책상 밑에서 눈을 가리는 그의 행동이 내게는 울컥하고 다가왔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는 무기력한 가장이었고, 나는 그의 삶에 차마 면죄부를 주지는 못하였으나 안타까운 마음이 계속해 남았다. (근세가 저택의 지하에서 살게 된 이유가, 기택과 마찬가지로 대만 카스테라 사업이 망해서였다는 점은 기택의 삶 자체가 복선임을 뜻하는지 모른다.)
 기우는 영화의 서사에서 가장 중심적이지만 동시에 감정선에서 주변부를 맴돌고 마는 배역이다. 심지어 종반부의 그는 감정이 완전히 엉킨 사람마냥, 이유 없이 웃음을 짓는 후유증을 앓는다. 기우는 영화 내내 “상징적”이라며 호들갑을 떨고, 끝내는 그의 상징에 매몰된 나머지 파국의 서막을 연다. 기우가 빛을 발하는 지점은 예고된 그의 절망이다. 그는 계획을 세웠지만, 기택의 말마따나 계획이란 실패하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눈보라 치는 반지하 속 기우의 계획은 아마도 실패할 테다. 그렇게 기우는 <기생충>이란 잔혹 서사의 꼼꼼한 마감을 책임진다.
 기정은 영화의 역류하는 폭력 속에서 유일하게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박사장 가족을 압도하며, 자신의 분위기를 밀어붙인다. (이를테면, 박사장 부인은 기우를 속이며 민혁보다 적은 돈을 건네지만, 기정은 처음부터 박사장 부인을 압도한다.) 저택에서 반지하로 흐르는 폭력과 빗물 속에서, 기정은 대체 계획이 뭐냐고 소리 지른다. 기택은 그런 그녀에게 다 생각이 있다며 안심시키려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기택은 박사장을 죽이고 지하로 숨어들며, 그가 기정과 기우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기정은 정화조가 역류하는 순간 속에서도 묵묵히 변기를 몸으로 억누르며, 자신의 비상금을 챙기고 담배를 태운다. (내가 꼽는 가장 훌륭한 미장센이 바로 이 장면이다.) 역류하는 빗물 속에서 기택과 기우는 표류하지만, 기정은 묵묵히 터져나오는 물을 몸으로 누른다.

 

 이렇게 쓰고 나면 나는 총체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앞서 이야기했듯, 고작 총체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욕망때문에 이 배역들을 뭉뚱그릴 자신이 내게는 없다. 나는 기택에 나를 투영했고 기정과 기우는 내 친구들의 모습이며, 그들의 반지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각자의 공간이기에. 그래서 이 글은 감상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본 후 나눈 대화들의 연장선에 가깝다. 차라리 편지글인지 모르겠다. 끝끝내 영화는 꼼꼼한 잔혹 서사의 박음질로 대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차라리 대안은 우리가 마주한 섬뜩함과 불안함, 혐오와 분노 그 언저리에 있는지 모른다. 명징과 직조를 떠나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오늘은 영화를 본 친구들 중에 아직 만나지 않은 이들과 밥이라도 먹자는 계획을 세웠다. 얼마나 성공할지 얼마나 실패할지는 알 수 없어도 그래야만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 모두가 나처럼 <기생충>의 이격거리에서 채 몸을 빼내지 못한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실패할 계획이라도, 나는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영화에는 다른 등장인물들이 더 있다. 한 때 투포환 선수였지만 무능한 남편때문에 고생하는 충식(그녀는 가족들이 4캔 만원 삿포로를 마실 적에도, 여전히 홀로 8캔 만원 필라이트를 마신다.)이 있고, 어딘가 80년대 운동권을 떠올리게 하는 문광-근세(폭풍우 치는 밤중에 안마를 하며 북한 아나운서를 흉내내며 즐거워 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괴이하다.) 커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에 대해 논하기에 벅차다고 느껴 일부러 남겨두었다. 언젠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 글에 보충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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