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ired
어제는 고깃집에서 고기를 먹다 문득 길가를 내다보았는데, 한 때 같이 일했던 사람을 본 것 같았다. 본 것 같았다,고 적을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렇다고 말을 붙여 근황을 얘기했다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이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다고 언뜻 들었기에, 아무래도 그는 내가 아는 그이가 맞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그이가 어떤 이인지 나는 모른다. 사실 그때의 그이도 나는 잘 모르겠다. 사실 감정이고 뭐고 전부 휘발된 상태에서 남은 것은 어떤 사실관계다. 인준 명단에서 사람 하나 제한다는 것, 나는 당시 그 감각을 되도록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야 나 역시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여렸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권정열의 목소리로, “어렸죠, 그때 난...”하고 노랫말을 흥얼거리게 된다. 나는 당시 친구가 필요했다. 내 나약함을 토해도 괜찮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모두가 토니 스타크처럼 페퍼 포츠를 만나는 것은 아니고, 나는 삭히고 억누르는 시간 속에서 담금질되었다. 덕분에 지금의 나는 매우 커졌다. 특히 체지방이 그렇다. 정신의 성장에 대해선 뭐라 단언하지 못하겠다. 군역 후에는 정신의 굳건함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이 찾아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다른 하루는 비겁하고 또 다른 하루는 삐걱대니, 스스로의 떳떳함을 묻는 나날이다.
어제 고기를 굽던 고깃집의 벽에는 민중이니 해방이니 하는 말들이 적혀 있었고, 심지어 새로운 사회 건설의 주역이 학생이니 뭐 그럼 말들이 적혀 있었다. 딱히 벽이 낡아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그 문장들이 농담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저런 어처구니 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니, 그리고 다시 방금 스쳐지나간, 이제는 지인이라 부르기도 뭐한 이를 떠올렸다. 언젠가 그이와 나도 그런 얘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언젠가 10년,20년 후를 기약하며, “야 우리 그때는 그렇게 살았었구나.” 추억팔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윗세대에서 물려받은 것들 혹은 그 무너진 잔해에서 추려낸 것들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을 읽는다. 현우가 취해서 비아냥대는 “고옹동체?”란 단어에서 흠칫했던 이유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익숙한 피로감이 몰아치는 바람에, 어제는 저스디스의 노래를 듣다가 일찍 잠에 들었다. <Re;Tired.>란 앨범 명에 자다가도 무릎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