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13

by 취생몽사

연예인으로 인해 붉어진 대한민국의 강간문화(마침내 나는 이 단어가 아주 정교하며 적확한 단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제복 입은 인간들에 의해 카르텔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제복 입은 인간들은 특정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이 5.56mm 탄환을 시민들 몸에 박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29년 전 빛고을을 핏빛으로 물들인 자는 기자들이 자신을 귀찮게 굴자 “이거 왜 이래” 호통을 친다. 개새끼들의 나라. 상놈과 천것들의 나라. 힘있는 자라고 다르지 않다. 아 물론 그 중 으뜸은 역시 법복 입은 자들 아닌가.

나는 언젠가 내 분을 넘치는 일을 받아 들어, 판관의 말 한마디로 직장도 돈도 목숨도 날아가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목도하게 되었다. 소위 ‘사법거래’라는 것인데, 그 이야기를 전하는 활동가의 얼굴에서 당장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절망을 함께 목도하게 되었다. 나는 양승태의 기사와 사진을 접할 때마다 끝없는 폭력에 대한 충동을 느끼는데, 젊은 나이의 치기를 감안하여도 내게 가장 증오스러운 인간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붙어먹은 대법관들과 지역 재판장들을 끌어다가 효수를 해야 한다.’ 정도가 그나마 온건한 문장일까.

어쨋거나 분노를 늘어놓는 순간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유리된 현실의 파편들이 부딪히기 시작한다. 비로소 혼란이 찾아온다. 앞선 예를 이어, 법복을 입고 있는 개새끼들에 대한 보도 속에서 마주한 현실은 도무지 내게 법조인에 대한 신뢰를 가져다 주지 못했다. 동시에 언젠가 법복을 입게 될 주변 친구들이 정말이지 죽어라 공부하고 있다는 현실은, 법조인들의 전문성을 수긍하게 만든다. 나는 그 친구들의 심성이나 선한 의지를 저울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법 자체가 지닌 체계성과 그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하는 현실은 기계적으로 전문성을 보장해주는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결론은 내 경험세계 바깥에 있을 것이다. 가산점 5점 늘리겠다고 영어 회화 시험 한 번에 77,000원을 쏟아부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두 번 세 번 치게 될세라 마음 졸이는 사람의 경험세계 바깥에 있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곁에 돈과 힘이 차오르면 사람은 변한다는 것이 통설아닌가. 그런 세계를 목도하고 나면, 나도 앞서 이야기한 두 현실에 한 조각 끼워넣어 이 거대한 아사리판의 아귀을 맞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의 나는 무엇을 지켜내고 무엇을 흘려보내야 하는가? 무기력함과 불안함이 동전의 앞 뒷면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동전을 튀기지 못하고 있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떨어진 동전이 결국 내게 마뜩찮은 결과를 보이게 될 것만 같다.

내가 몇해 전 그토록 외쳐댔던 지성인이니, 대학생이니 하는 단어들에 나는 얼마나 부끄러운가. 현저하게 줄어든 독서량, 사유의 얄팍함, 아집과 편견에 둘러 쌓여 있다. 오늘같이 감정 조절조차 잘 되지 않는 날에는 매순간 열패감마저 든다. 결국엔 현실의 가장 모난 부분으로 부조리의 심장을 꿰뚫어야 한다. 개새끼들에게 철퇴를 내리지는 못해도 도망치지는 말아야 한다. 숨쉬듯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나를 매번 부끄럽게 한다. 우선 가까운 책부터 읽어 나가야 한다. 닥치는 대로 읽고 닥치는 대로 빨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다. 반복된 정체는 비겁하거나 삐걱댈 뿐이다.

하아, 글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문장만 자꾸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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