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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23.06.09)

남도단박 일 년 후

작년 강진에서 차를 멈추고 바라본 그 꽃의 이름은 아마도 큰금계국이었다. 금계국이라는 꽃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크다는 뜻이란다. 찍어둔 사진을 보니 꽃 전체가 노란빛을 띠는 것이 큰금계국 같다. 금계국은 꽃 가운데에 짙은 무늬가 있어 다르다고 하니 아무래도 추측이 맞을 것이다. 미국에서 들어왔다는 큰금계국은 여러 해를 살며 다른 꽃이 피어날 자리를 막는 탓에 생태파괴종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더 강인하고 억센 탓에 생태파괴종이라 불려야 하니 조금 억울할 텐가? 아무튼 이 녀석은 조금 꺼림칙하나 분명 아름답다. 여름에 피는 이 꽃이 나는 여느 봄꽃보다도 즐겁다.


5월 하순부터 핀다는 이 꽃을 다시 보게 된 건 수원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철로를 따라 노란 물결이 굽이치는 것을 보았는데, 작년 강진의 도로를 떠올렸다. 그때 만난 그 녀석이 틀림없었다. 지나가는 차들의 바람에 날려 차도 곁을 메웠을 터이니, 철로가에 피는 이 꽃들 역시 어색하지 않다. 사람이 손이 별로 닿을 리 없는 철로 중간중간 노란 물결이 스친다. 달리는 기차에 또 한 움큼 씨앗이 흩어질지, 그래서 어딘가 뿌리를 내릴 수만 있다면 또 그 노란 물결을 흩뿌릴지. 그래서 이 계절만 찾아오면 언제고 쳐다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댈지 궁금했다.


문득 큰금계국 꽃잎 끝에서 나는 다짐을 했다. 나는 당분간 술을 끊기로 했다. 녹차를 구해다 마실까 한다. 또 나는 당분간 머리도 자르지 않기로 했다. 수염은 적당히 정리해야겠으나, 머리는 내버려 두려고 한다. 또또 나는 당분간 운동을 가급적 매일 하기로 했다. 책은 정약용을 읽어보기로 했고, 영화는 가리지 않고 많이 보기로 했고, 드라마도 몇 편 추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다시 글을 꾸준히 써보기로 했다. 이런 기행의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규칙적인 생활과 홀가분한 마음 정도면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억센 사람이 되고 싶다. 억센 마음에 맞서려거든 나부터 억세 져야 하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 이성의 끈이 길어진다는 벗의 말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고민스럽네. 이 날들이 전부 지나가면 다시 남도에 다녀와야지. 민어도 먹고 하모도 먹고, 지난번에 미처 둘러보지 못한 풍경들을 다시 껴안아야지. 남도단박은 조금 많이 아쉽지 않은가. BGM도 정해두었다. NGHFB. 당신에겐 높이 나는 새가 있어서 좋겠수. 하지만 언제나 전지전능한 나의 발라드. “Followed you down to the end of the world To wait outside your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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