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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심바 단상(24.06.05)

110.12

거의 힙합을 잘 안 듣거나 유명한 힙합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손심바’라는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어야 했다.


최근 디시인사이드 힙합갤러리 힙갤고고학 팀은 손심바의 커뮤니티(디시 힙갤, 힙합 엘이, 펨코 힙갤, 나무위키 등) 다중 계정 의혹을 전시하는 것에 열중하고 있다. 그 기간은 적게 잡아도 7-8년은 되는 것으로 보이며, 다중 계정을 통해 손심바 본인을 치켜세우고 다른 동료 래퍼들을 까내리는 글은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쯤 되는 것 같다. 어차피 맨스티어가 먹은 국힙판 찐따 래퍼 하나 어떻게 된다고 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문제는 손심바란 이름이 힙합 매니아들에게만 낯익은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다. 손심바는 본인의 앨범 제목 보다도 공론화 사건으로 유명한 래퍼인데, 3년 전쯤 알페스 공론화를 해야 한다며 아이돌은 물론 자신도 알페스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당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호응(나무위키는 해당 사건의 결과를 남초 커뮤니티가 반페미 정서로 결집하게 되는 사건으로 분석하고 있다.)에 밀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라면, 대체 어떤 사람이 손심바 따위를 알페스 대상으로 삼고 싶어 할까? 하는 점이다. 손심바는 외모로 이름난 래퍼도 아니고 비와이 친구라는 점, 하이라이트와 디스 사건으로 엮였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 지코 빈지노 냅두고 손심바를 알페스하는 부녀자가 있다는 것이 가능한가? 해당 사진은 당시 손심바가 올린 본인 인스타 스토리이다. 당시에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해당 글은 트위터 비계(비공개 계정)로 작성된 53초 전 글이다. 이게 가능할까? 손심바(혹은 손심바의 지인)가 마침 손심바를 상대로 알페스 글을 쓰는 부녀자와 맞팔이었으며, 해당 비계가 글을 올린 53초 후에 그걸 캡처한 것이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혹시 손심바 본인이 글을 쓰고 바로 캡처한 것은 아닐까?


힙갤고고학이 남긴 유명한 격언 “심싶심“은 ”심바인가 싶으면 심바가 맞다.“고 말할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갑작스레 레이블도 탈퇴하고 모든 활동을 접고 사라진 손심바가 돌아와 고해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아마 우리는 그 진실을 알기 힘들 것이다. 다만 이 추측이 맞다는 전제 하에 심바가 쏘아 올린 자작극은 국힙을 넘어 대한민국 인터넷 커뮤니티 전반을 먹여 삼켰다. 당시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거대한 안티 페미 정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고(사실 기존부터 그런 정서야 팽배했지만, 결집할 계기가 되어주었다.) 그 기조는 여전히 유지 중이다. 이를 두고 당시 존경하는 선생님들의 여러 고견과 갑론을박이 즐비했다. 그 모든 일의 시작에 손심바가 있었다는 게 나는  마냥 충격적이다.


개인적으로 해당 논쟁은 꽤 괜찮은 고찰을 남기기도 했다. 남자 아이돌에 대한 알페스가 여자 아이돌에 대한 딥페이크와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아이돌이라는 산업 자체에 깔려있는 착취적인 요소 등등이 그렇다. 물론 이런 것들에 큰 관심이 없던 심바는 “페미에게 맞서 목소리 내준 래퍼”라며 자신의 신곡을 펨코에 홍보했다. 국힙이 망해서 다행인 것 하나라면 더 이상 그의 신곡 같은 걸 들어줄 힙합팬이 아예 없다는 사실 아닐까? 나는 손심바라는 인물에게 이제 일종의 학구적인 호기심을 느끼고 있으며, 손심바가 공론화한 알페스와 그 이후의 우리 사회 또한 한 편의 논문감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전에 나는 손심바가 하라는 랩은 안 하고 알페스 국민청원 같은 것을 하고 있다길래, “심바품바연구소”같은 것이나 만들라고 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내가 그의 예술성을 지나치게 얕잡아본 것 같다. 이게 행위 예술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힙갤고고학 게시물을 전부 다 읽었다. 손심바 같은 인간을 지나치게 별종으로 보는 점만 제외한다면, 내가 디시에서 읽은 글 중에 제법 학구적인 글에 속하는 것 같다. 적어도 내 석사 1학기에 냈던 학회 논문보다는 나은 것 같다. 특히 그들의 대단한 점은 손심바의 SNS 기록 역시 분석하여 그가 같이 무대에 서고 같이 앨범을 작업하던 친구들에게 뒤에서는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인간들은 사실 우리 주변에 제법 있는 편이다. 본인 어려웠던 시절 내민 손은 기억 못 하고 호시탐탐 뒤통수를 치려는 개새끼들. 거짓말이 탄로 나면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었네, 이야기할 타이밍을 못 잡았네 어쩌네 한다. 개새끼들 잡아먹는 야차로 태어난 넉살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손심바 같은 개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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