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홍시 Aug 27. 2021

잡문 124 - 나도 모르는 나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위 문장은 무한도전에서 나온 것으로, 주로 어느 게시글이 마음에 들 경우에 댓글로 남기곤 하는 인터넷 밈이다. 단순히 "나 이런 거 너무 좋아!"라면 그냥 지나갔을 문장이, "나 이런 거 좋아하네."라고 바꾸니 굉장히 아이러니하고 재밌어졌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처럼 자신의 취향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하게도 잘 알 수가 없다. 내가 이걸 좋아하게 될지 어떨지는 해 본 후에야 결론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한번 해 보고도 모르는 것들 또한 수두룩할지 모른다.

이것은 비단 취향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그 말은 남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과연 나를 잘 알까?"


내가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이 착각이 '할 수 있는 많은 시도들'을 할 수 없게 만든다.

해 보지도 않고 '이건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것은, 나의 세계를 좁게 만들  뿐이다.

사람을 속단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막상 스스로는 속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는 나의 생각을 전부 알고, 내가 살아온 과정을 모두 알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남들보다야 잘 알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취향이나 호불호 같은 것들은 살면서 어떠한 계기로든 바뀔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을 포함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은 평생의 숙제와도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떻게 리포트를 다 쓰지도 않은 채 결론을 내려버린단 말인가.


해 보지도 않고, 경험해 보지도 않고, 스스로를 속단해 '나는 이런 걸 하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면 우리는 조금 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그것은 타인의 취향이나 행동을 멋대로 재단하는 기준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어떤 행동을 하는 누군가를 '그 행동을 절대로 하지 않을 나'로서 비판할 때, 우리는 전제 조건 자체가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아티스트의 곡이 어느 날 마음에 날아와 꽂힐 때.

절대 내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행동이나 말이 나로부터 나올 때.

나는 내가 나에 대해 아직도 한참을 모른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해진다.


속단은 잘못된 전제조건과 편협한 증거 수집, 그리고 자만으로부터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부분 부분 드러나 있다. 나도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다. 경험하기 전 까지는.


속단은 금물.

스스로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잡문 123 - 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