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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홍시 Mar 15. 2022

잡문 133 - 내가 되네

쉬이 잠에 들지 못하는 매일, 매운 라면을 먹은 것 마냥 속이 쓰려와

요즘 들어 부쩍 약해진 위장을 탓하며 배를 움켜쥐지만

꽤나 키가 커버린 레몬 오렌지 나무는 밑동이 조금씩 말라가고 있어

집들이 선물로 받은 이름 모를 식물은 그 예쁜 잎을 잃은 지 오래

야금야금 찌던 살은 어느새 10kg이 늘어

나는 매일 거울 속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마주하고 말지

인정하기 싫지만 눈물 나게 싫지만

부정하고 싶은 지금 이게 나야


열심히, 또 아주 조금씩, 나는 돌아가

매일 꾸준히, 아주 천천히, 나는 돌아가

나는 비로소 익숙한 내가 되네

나는 또다시 그렇게 내가 되네

지긋지긋할 만치 편안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다시 내가 되네


별다른 노력도 없이 나아지기만 바라는 나를 데리고 사는 게

나도 좋지만은 않아

그래도 웃긴 건 뭔 줄 아니?

정말이지 돌아가고 싶지 않던 나로 다시 돌아온 오늘

눈물 나게 싫지만 웃기게도 편안해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이 몹쓸 감정과 기분들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지겨운 감각들이 날개 돋듯 돋아나

보이니? 여기에 내 부서진 날개가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너저분한 날개

부서졌지만 내게도 날개가 있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지 뭐야


나는 비로소 익숙한 내가 되네

나는 또다시 그렇게 내가 되네

지긋지긋할 만치 편안한

돌아오고 싶지 않았던

다시 내가 되네


쉬이 깨어나지 못하는 아침, 첫 이별의 순간 마냥 마음이 아려와

안녕 나야

돌고 돌아 다시 돌아왔어

나이 든 몸뚱이만 가지고 다시 돌아왔어

잠시 꿈이라도 꾼 것 같아

괜찮아 그때 그대로

정말 꿈을 꾼 것뿐이야

괜찮아

다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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