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대를 존중하라. -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4
아무리 철저하게 탄압하더라도 토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일단 한 번 말문이 열리면 확신에 바탕을 두지 않은 믿음은 사소한 비판 앞에서도 쉽사리 무너지기 때문이다.
밀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바탕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도구로 밀은 ‘토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지요.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아무리 탄압이 철저하게 들어와도 토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일제 강점기 일제는 조선인들을 탄압했지만 조선인들이 조선어로 자신들의 생각을 하는 것까지 탄압하지는 못했지요. 또한 중세 유럽에서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탄압했지만 결과적으로 갈릴레이가 법정에서 나와서 했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처럼 완전히 탄압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밀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 엄석대가 급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같은 반 아이들을 철저하게 탄압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같은 반 학생들의 물건을 강제로 뺏거나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시험지를 맞바꾸는 것이 그것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 과정에서 한병태가 비리를 고발했지만 엄석대가 어떻게든 무마를 시켜버리지요.(시험지를 바꾸는 것은 물론 한병태가 엄석대가 만든 질서로 들어간 후입니다. 한병태의 고발은 그전에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5학년 담임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6학년이 되자 담임선생님은 바뀌면서 엄석대가 구축한 질서는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반장선거의 득표율에서 드러나게 되지요. 엄석대의 비정상적인 득표율에 담임선생님은 이것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죠.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엄석대가 구축한 질서가 유지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터지게 되는데요. 엄석대는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입니다. 물론 같은 반의 공부 잘하는 학생의 시험지와 자신의 시험지를 맞바꿔서 그런 것이지만 전교 1등으로 학교에서는 소문이 나 있었죠. 그런데 산수 시간에 전교 1등을 하는 학생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문제에 쩔쩔매는 것을 본 담임선생님의 엄석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되죠.(수학을 잘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 번 쩔쩔매다 보면 의심이 가게 마련이죠.) 여기까지는 담임선생님도 확실한 물증이 잡히지 않았기에 그냥 넘어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히죠. 시험 날 시험지에 엄석대가 이름을 바꿔치기한 흔적이 나오자 담임선생님은 칼을 빼들고 엄석대를 벌하게 됩니다. 그 후 같은 반 학생들은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엄석대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엄석대의 시대가 막을 내린 데에는 같은 반 학생들이 엄석대의 비리를 고발한 것이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이는 몇 년 동안 엄석대가 같은 반 학생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겉으로는 막았을지 몰라도 속까지는 막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반 학생들이 거침없이 폭로를 한 것입니다. 소설 속의 엄석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탄압을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속까지 탄압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생각의 차이가 생기는 분야에서는 상반된 두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다음에 진리를 찾아야 한다.
선생이나 책을 통해서 주입식으로만 지식을 얻는 사람은 엉터리 자기만족의 유혹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가 되는 사안의 양쪽을 모두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보통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사상가들까지도 양쪽의 견해에 대해 두루 잘 아는 경우가 드물다
상대편이 존재하기 때문에 양쪽 모두가 이성과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귀족정치, 재산과 평등, 협력과 경쟁, 사치와 절제, 사회성과 개별성, 자유와 규율, 그리고 일상적인 삶에서 부딪히는 모든 상반된 주장들이 그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고 똑같은 비중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 각 주장에 담긴 내용들이 빛을 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가지고 또 그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자유가 허용되거나 강조되지 않으면 인간의 지적 발달과 그를 통한 도덕 생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밀은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 상반된 의견을 똑같은 비중으로 가치를 인정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의견을 표현할 자유와 그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나와 같은 동등한 입장으로 대할 때 토론을 하더라도 나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의 의견도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경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활발한 토론으로 한층 수월하게 의견을 조율하고 결론은 도출해 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밀이 말한 ‘표현의 자유’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밀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면서 토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주입식 교육은 상대를 무조건 이기기 위한 것이어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대하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밀은 이런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하라고 합니다. 실제로 주입식 교육이 아닌 사고하고 생각하는 교육은 협력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가능하죠. 일례로 유대인의 교육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밀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교육을 중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발전을 하는 존재이기에 교육을 어떻게 받느냐가 그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밀은 교육을 통해 상대방을 존중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강조합니다. 밀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밀은 자신이 말을 하는데 대한 모든 위험과 불확실성을 본인 스스로 책임을 지는 한, 다른 사람에게서 일체의 물리적·도덕적 방해를 받지 않고 각자 생각대로 말할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자유는 그것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을 합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