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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씨 May 25. 2019

Friend Like You, Genie!

영화  <알라딘>, 2019

평일 대낮에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운은 텅텅 빈 상영관에서 시작된다. <알라딘>을 보던 날, 평일 점심시간 내가 있었던 상영관에는 나포함 딱 두 명뿐이었다. 영화를 보며 순간적으로 고개를 까딱까딱하다 본격적으로 몸통을 흔들던 나는, 이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정말 만약에 내가 마술 램프를 갖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소원 3가지를 빌까? 입꼬리가 올라가는 동시에, '소원 하나! 소원을 열개 아니 백개로 늘려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이 따위 소원은 먹히지 않는다. 2019년 지니는 심지어 이렇게 말한다. "어이 친구, 정 소원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돈과 권력 같은 건 빌지 않는 게 좋아. 그건 끝도 만족도 없거든. 지금까지 그 소원을 사용한 사람들은 다 그랬어." 사실 우리는 저 착하고 용감한 알라딘이 끝내 재스민 공주와 이어질 거라는 거쯤은 다 안다. 저 알라딘은 현명하게도(멍청하게도?) 사심과 흑심 따위로 소원권을 낭비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꼬마 아이들은 이 영화를 어떻게 봤을까? 알라딘의 거짓말이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을까, 공주와 헤어질까 봐 불안했을까, 또 꼬마 아이들은 어떤 소원이 빌고 싶을까. (부디 건물주라던가 전교 1등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감정 기복이 심하고 꿈과 동화의 나라라면 모르는 사람도 따라나설 거 같은 어른이(어른+어린이) 날아다니는 요술 양탄자가 신기하진 않았지만 정의감 넘치고, 용감하고 바른 알라딘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런 알라딘을 알아봐 주는 공주가 있다는 것도. "야 인마, 세상 물정 모르고! 착하면 호구가 되는 세상이야. 집도 절도 없는 게 제 분수를 알아야지. 멍청하게 그런 소원을!"이라는 때 묻은 잔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답니다.'라고 믿으며 영화관을 나왔다. 어느덧 동화가 생경한 나이가 된 나는 진심으로, 알라딘 이나 지니같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면 세 가지 소원 중 하나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겠다 싶더라. 결국 어른이가 본 이 영화는, 돈도 권력도 아닌 사랑과 친구가 제일이랍니다-였다. (그러고 보면 알라딘은 다 가졌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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