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마름을 흘려 보낸 소박한 미소
여름의 찬란한 빛을
가득 머금은 두류산의 품은
이를 데 없이 넉넉했건만
나는 줄곧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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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에 도착한 직후에도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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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 낯빛을 바꾼 것은
수천 년 고찰의 당우도 아니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불탑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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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너머에
우두커니 서있던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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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도 그 소박한 미소가
나의 성마름을 바람에 흘려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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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위에 목화솜 같은
구름을 얹은 동자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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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꾸듯,
무심하게 폐사지를 지켰을 돌벅수가
지금도 눈동자에 선명하게 맺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