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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rire Mar 30. 2024

결혼식, 결혼

이 둘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어려서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질문 하나. "ㅇㅇ이는 커서 누구랑 결혼할 거야~?"

조그만 아이가 예쁘니까 어른들은 그냥 하는 말이었겠지만 딴엔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답을 했었던 이 질문 하나에 담긴 깊이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깊어진다.


그러니까, 어려서 이런 질문을 들었을 때는 집 어딘가에 걸린 큰 액자 속에서 예쁜 흰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처럼 저런 모습이고 싶으냐는 질문으로 들렸다. '당연하지, 나도 엄마처럼 저렇게 결혼할 거지.'라고 속으로는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혼인적령기'라고 불리는 나이가 다가오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삼수까지 하고 취직도 2년 만에 겨우 했는데, 이제 막 정규직이 되었는데. 이제 결혼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압박감이 오히려 느껴지기도 하고.. 이상하게 이 나의 예쁜 20대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오히려 이제 끝날 것 같다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이 아니면 나를 좋아해 주는 남자가 없을 것 같은 다급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결혼했다는 섣부른 결론이 나올까 봐 겁나서 미리 얘기하면, 어쨌든 나는 다시는 없을 좋은 남자라는 확신이 들어서 결혼을 했다.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런 잡담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은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고민한 사람치고는 웃기지만,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결혼을 했다. 데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아쉬워서, 2~3일에 한 번 보는 것이 아쉬워서, 아픈데 뭐 하나 해다 줄 수 없이 멀리 있어서, 그래서 하루빨리 결혼'식'을 마쳐버렸다.


적어도 나에게 결혼'식'은 핑계였고 수단이었다. 그냥 같이 살고 싶은데- 왠지 결혼식을 하지 않으면 동거를 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집 문제 때문에(라고 쓰고 덕분에라 읽는) 우린 결혼식을 올리기 두 달 전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그 또한 시원하게 그러라는 부모님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 맘대로 한 일이라 초조했기 때문에 "동거는 되바라진 거야"라는 사회적 통념의 무게에 뭔가가 더 얹어진 것 같은 죄책감으로 두 달을 지냈다.


그래서 빨리 결혼식을 해치워버리고만 싶었다. 그날 신부가 주인공이고 어쩌고 하는 모든 말들이 싫었다. 나는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라서" 모든 나의 결혼식 여정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인생 자체가 완벽하지 않다. 그거 하나 빈틈없이 준비한다고 해도 누군가는 빈틈을 느끼기 마련일 거다. 다이어트도 하지 않았다. 맞춰놓은 드레스를 늘리고 싶지 않았고, 맨날 퇴근 후 술자리를 만드는 아저씨들에게 먹힐만한 핑곗거리가 "결혼 준비로 인한 다이어트"였기 때문에 난 공식적인 다이어터였을 뿐이었지.


남들 다한다고 하지 말자. 예물은 간단히 결혼반지만 하자. 예단은 뭐야, 폐백 이것도 하지 말자. 결혼반지는 종로귀금속상가에 가서 맞추자. 간 김에 광장시장에서 육회도 먹고. 청첩장은 제일 저렴한 걸로 하자.

무엇보다, 결혼식을 작게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작게 할수록 유난인 것이 사실이었다. 웨딩업계의 생리가 그랬다. 게다가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정년 퇴임하신 인싸 시아버지의 희망사항을 받아들여 그래, 예식장의 규모만큼은 성대하게 해 보자고 정했다.


아무리 최소한으로 하자고 이야기해 놓고도 결혼식이라는 건 나만의, 우리만의 행사일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자식을 이만큼 키워놓은 부모님의 몫이 컸기에 완전히 나와 남편만의 결혼식이라고 말해버리는 건 어쩐지 부모님들에 대한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의 손님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일 예정이었다. 저 멀리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까지 배려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터미널과 지하철역이 지척인 강남의 어딘가로 정했고, 최대한 주차시설이 잘 갖추어졌으며 식사는 앉아서 하실 수 있는- 뷔페가 아닌 곳으로 정했다.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조금 이르다고 느낄 법한 시기에 결정되어야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느긋해야 했고, 또 급해야 했다. 어떨 때는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 난 철딱서니였으며, 어떨 때는 알아서 척척 해내는 야무진 예비 신부였다. 그렇게 결혼식을 위해 결정해야 할 것들, 그 결정에 고려를 해야 하는 마이너 하면서도 메이저 한 것들로 분주한 1년이 흘렀다.


그리고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결혼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결혼생활의 스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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