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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erire Jul 29. 2024

취미가 무엇입니까?에 대답하는 바람직한 자세

그럼 특기는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뭘 잘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오죽하면 많은 회사에 “취미 찾기”가 목적인 동아리가 있을까. 퇴직하고 나니 막막하다는 것, 여분의 인생이 주어졌다고 표현하는 것, 노년기에 심심하다고 느끼는 그 모든 것들이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해 본다.


취미는 무엇이길래, 이다지도 우리에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는 걸까.

특기는 왜 늘 취미 옆에 붙어있는 것일까.

첫 줄에서도 언급했듯, 취미와 특기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취미: hobby, 금전이 아닌 기쁨을 얻기 위해 하는 활동. 즉,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특기: specialty, 특기(特技)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주제인만큼 가벼운 녀석들이, 자기소개서나 면접장에만 등장하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질 수가 없다. 왜일까.

난 2가지 이유에서 그렇게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첫째, 어떠한 의도를 담아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냥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생각해 보면 되는데, 그것을 업무와 직무적으로 엮어보려고 어떻게든 애쓰다 보니 거기에 맞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취미나 특기를 자신의 기호나 지기(知己)의 측면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 해소 측면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해소가 될 수 있다면 같은 말이지만- 순서가 바뀌었다. 어떤 일을 할 때 스트레스가 해소되는가에 대한 답이 취미나 특기가 아니다. 취미나 특기가 있다면 스트레스 해소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어쨌든 그렇게 잠정적 결론을 내린 이유는 면접장에는 취미가 운동 종류인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회사에 가 보면 운동을 못해서 살이 쪘다는 사람이 천지에 널렸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에 치이고 바빠서 운동을 못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라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취미라면 퇴근하고 하든지, 주말에라도 하든지, 아침에라도 하고 와야 맞다.


물론-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조건을 달지 않고 생각하면 조금은 더 내려놓고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원래 연애할 때도 이런저런 조건을 하나씩 걸기 시작하면 수많은 후보군이 떨어져 나간다. 예컨대 "나는 눈 안 높아. 키만 크면 돼- 예쁘면 돼-" 같은 조건 말이다.


그래서 나의 취미나 특기가 무엇이냐면, 뭐 하나라고 말하기 어렵게 많다.


일단 취미는 시즌별로 있고, 날씨 따라, 기분 따라 있다.

퇴근 후에는 꼭 동네 산책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근력운동을 해야 속이 편안하다. 여름, 가을에는 꼭 등산을 가 줘야 하고, 마라톤은 연에 2회는 해야 1년을 잘 산 것 같은 이상한 보람을 느낀다. 그리고 자칭 문덕(문구덕후)인 나는.. 주기적으로 문구류 쇼핑을 좀 해 주어야 한다. 만년필로 사각사각 글씨를 쓰고- 잉크 냄새를 맡으며 힐링을 하기도 한다. 취향 일기, 식사 일기, 감사 일기, 칭찬 일기, 인간관계 다이어리, 독후감 다이어리, 책 보며 쓰는 막 다이어리, 필사 노트, 감정 노트- 나도 몇 가지인지 모르겠는 이 노트들에 매일매일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것이 내 삶의 낙이다. 날이 좋으면 이 모든 것들을 이고 지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 카페로 마실을 나가서 세 시간 정도 다이어리를 쓰고 돌아온다. 말하면서도 행복하다.

그러다 보니 특기가 좀 웃긴데, 나는 분류나 정리하기를 잘한다. 집에 있는 물건들을 이리저리 분류해서 상자에 정리해 두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자주 정리하다 보면 가끔 내가 어디에 뭘 넣었는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정리할 때만큼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장에서 취미, 특기를 묻는 이유는 이전의 글들에서 줄곧 이야기했던 이유와 그 맥이 같다. 얼마나 자신의 철학이, 생각이 있는 사람인지를 일관되게 보고자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참 좋아하는 책의 한 구절을 언급하면서 이번 주제를 마무리할까 한다.


무엇을 제대로 좋아하는 일은 어렵다. 너무 좋아하다 보면 집착이 생긴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상책인가 (...) 좋아하지 않으면 집착할 일도 없으리니, 상심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인생을 풍요롭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상심할 일도 없지만 기쁠 일도 없는 인생. 그것은 고적한 인생이다.

무엇을 좋아해도 문제고 좋아하지 않아도 문제라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아이돌 열성팬들은 뒷일을 걱정하지 말고 마냥 좋아하라고 할 것이다. 속세를 떠난 사람은 그런 열성은 다 헛된 집착에 불과하다고 할 것이다. 집착과 초연 중에서 무엇을 택해야 하나.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해 소식*은 대상을 일단 좋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인정한다.

세속의 쾌락을 흔쾌히 긍정한 사람답게, 소식은 동파육이라는 맛있는 음식의 레시피를 개발했다고 한다. 소식에 따르면 인간은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포옹해야 한다. '덕질'을 해야 한다.


출처:  p269,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김영민(2019)


*소식: 중국 북송시대의 학자, 정치가, 문장가

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C%8B%9D_(%EB%B6%81%EC%86%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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