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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Aug 24. 2017

서울에서 취준하는 옥시기의 일기 #1

의,식,주의 문제까지 감당하라니.

 나는 삼남매중 첫째로,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첫째라는 압박과 부담에 시달렸었다. 내가 스스로 그런 부담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부모님의 "첫째니까"라는 무심코 던져진 말이 점점 바늘이돼서 내 가슴속에 콱 박혀버린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는 쉬더라도 쉬는것 같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기숙사에서, 외국에서, 자취하며, 고시원에서 지내는걸 선호하게됐다. 스무살 이후로 6년 가까운 시간동안 집에서 지낸 시간은 2년도 되지않았을 정도다. 자연스러운 경우일 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간동안 정말 최소한의 용돈을 받고 모자르면 알바를 하면서 '악착같이' 노력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며 전전긍긍했고 돈이 없어서 친구를 만나 놀지도 못했고, (다이어트 목적도 있었지만)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용돈을 더 달라고 말하지 못했던것은 내 책임감 때문도 있었지만, 용돈을 더 달라고 할 때마다 한소리씩 듣는게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다. 24세 때부터 나는 "이제 돈벌어서 엄마아빠한테 용돈을 줘야 할 나이에" 용돈을 받아쓰고있는 못난 딸이 됐다.


 그러던 내가 지난 3월부터 학교 기숙사에서 나오게되면서 서울에서 또 타지생활을 하게됐다. 다행히 나라에서 나오는 소정의 용돈이 있었기에 그 돈으로 방세를 내고 남은 돈과 집에서 주는 용돈으로 그럭저럭 생활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0만원 남짓 되는 돈으로 밥, 교통비(매일 종로-강남 왕복), 데이트비, 기타(화장품, 생필품 등)를 해결하기가 너무너무너무나 힘들었다. 더군다나 좁은 고시원에서 사촌동생과 함께 생활한다는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혼자 입고, 먹고, 자는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을까. 옷도 돈이 없으면 못사서 벌어사야하고, 먹는것도 사거나 직접 지어먹고, 집도 내가 보러다니고 집세도 내야하는 이런 낙동강 오리알신세를 모두들 겪어봤던걸까. 아니면 나만 유독 힘든것일까ㅜ  25살의 독립준비기는 이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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