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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oooong Apr 04. 2017

꽃의 나라, 소년이 온다

__ 팔십년 오월의 광주,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알고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지금은 잊혔다.


__ 오늘 아침 신문기사가 눈에 띈다. <전두환 회고록>, 세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해져 온 모든 악담과 증오와 저주의 목소리는 주로 광주사태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광주사태로 인한 상처와 분노가 남아 있는 한 그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에 내놓은 제물이 없을 수 없다고 하겠다. 광주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 회고록 서문에 밝힌 내용은 이러했다.


__ 1992년 대학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흘러간 대한민국의 시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몰랐던 사실에 수치와 분노의 감정을, 때론 외면도 내 모습이다. 오월의 광주는 십여 년 대학생활 내내 내 곁을 벗어난 적이 없다. 광주의 과거를 현재로 다시 끌어냈고, 더 많은 후배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광주로 안내하였다. 광주는 그렇게 잊혀졌다.


__ 한강은 중편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언론에서 호들갑이니 자연 그 소음에 관심을 가졌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두 권의 책을 빳빳한 새책으로 샀다. 소년, 다시 광주를 만났다. 그리고 덮었다.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분노, 잊혀진 광주를 떠올린 건 내내 불편한 일이었다. 다시 이 책을 펼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아세운 책, 소년이 온다.


__ 이용주 산문집에 나온 한창훈, 시인과 작가의 어울리는 모습이 나쁘진 않았다. 한창훈 여러 소설 중 선택한 책이 <꽃의 나라>였다. 책 뒷장에 '폭력'이란 단어가 사회풍자, 사회고발임을 짐작한 것이다. 책을 취하는 나만의 엉뚱함도 때론 좋은 책, 읽을 만한 책이라는 만족으로 이어지곤 한다.


__ 꽃의 나라, 대한민국이다. 가정에서의 폭력, 학교에서의 폭력. 그리고 국가의 폭력을 있는 그대로 들어낸다. 책 막바지에 이르고서야 국가폭력은 내 기억에서 사라진 광주였던 것이다. 용산이자 쌍용차였던 것이다. 세월호다. 다시 소년이 왔다. 외면하기로 마음먹은 그 소년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란 말인가.


__ 책은 자꾸만 내 기억을 헤집는다. 엉망으로 꼬인 실타래 끄트머리 겨우 찾았을 뿐인데, 그 파편을 글로 남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__ 고은 <순간의 꽃> 작은 시편의 단장이 떠오른다. "아우슈비츠에 가서 / 쌓인 안경들을 보았다 / 쌓인 산더미 신발들을 보았다 / 돌아오는 길은 / 서로 다른 창 밖을 바라보았다" "소년 감방 / 날마다 손을 놀린다 / 팔을 놀린다 / 굳어지지 않아야 / 나가서 / 다시 소매치기할 수 있지"


__ 2017.4.3. 눈이 부시다. 아침 창 넘은 햇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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