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oooong Jan 17. 2022

다른 말로, 완벽하다

사람들은 해롭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을 욕망한다


1. 관광소주(觀光燒酒)


복학생, 고등학교 일 학년. 돌이켜보면 아슬아슬한 기억. 때가 되었으니 복학을 준비했을 테죠. 전연 기억에 없는 시간이지만 대충 꿰맞추자면 모르긴 해도 꽤나 긴장 이상의 두려움이 앞섰을 겁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교문을 벗어나던 후련함과 두려움의 겹침, 그나마 흐린 기억을 남겼지만.) 고량주를 앞세워 복학 시절을 불러들인 이유, 술을 배웠다기보다는 술을 들이켰던, 그래야만 했지요. 복학생 신분은 입학생 신분과 결이 다른 거칢, 그렇게 보이고, 그렇게 불린 당혹감, 열패감. 대충 그림을 그려보니 그런 감정 뭉치였을 것 같네요. 먼저 시비(是非)하고, 먼저 수작(酬酌)하였지요. 주먹다짐의 끝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야 했고, 그나마 수작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인연으로 남겼지요. 어울리고 싶었고, 어울려야 했지요. 무리에서 더는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악다물었지요. 주먹다짐의 녀석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분명합니다. 수작의 인연은  대학교수로, 경찰로, 지금도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요. 수작과 작난(장난)의 수단은 담배와 소주, 칵테일과 음악다방. 이쯤에서 등장해야 할 관광소주. 어두컴컴한 주점을 찾은 이유는 오직 관광소주. 사각병 각진 디자인으로 양주병을 닮은 파격을 내세웠지만 결과는 냉랭한 외면으로, 역사를 들추니 그런 기록이 보입니다. 소주와 담배, 청춘의 낭만이자 허세로 새겼던, 그 앞자리에는 발랄한 소녀가 있어야 청춘의 완성 아니겠습니까. 다만 그 완성의 자리에는 늘 수줍던 소년이 앉아 있었지요. 그게 뭐라고.  


2. 막걸리


막 걸러 막걸리. 인연은 족히 마흔 해 정도는 거꾸로 거슬러야죠. 동네 대폿집에서 막걸리 주전자를 나르고, 아버지 모시러 가야했던(꼭 어린 꼬마를 앞세워야 했을지), 어쩌면 막걸리는 열 살 남짓에 맛보았을지도 모를 일.

훌쩍 건너뛰어 대학으로 공간이동. 관계의 근본은 술이던가, 알 수 없는 선배의 위력에 주눅 들었던 시절, 지금 다시 그 시절을 살라고 하면 꽤나 억울했을 법합니다. 이유가 있었고, 이유가 없었고, 오로지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술이었을 것 같았던 시절. 거칠었지요. 분노와 반항도 심했지요. 즐거움은커녕 조심스럽고 조마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의 부름에 따라나선 곳, 기억해서 다시 찾기 어려울 것 같던 용머리고개 대폿집. 그 시끄러움을 어찌 견뎠을지, 즐겼을지, 누렸을지, 그 어떤 기억도 자신 없네요. 억지스럽지만 뭔가 대단해 보일 요량으로 잔디밭에 자리를 폈던 그 무모함은 대체 어디서 생겼던 것이지, 부끄러움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았네요. 하 수상했을 시절을 핑계로 인연으로 잇지도 못할 사람들과 스쳤으니 다들 안녕하실 테지요. 쾨쾨한 지하 구석에서 소리 높여 노래하던 그 우정 어린 치기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다 그놈의 막걸리 때문이라고 해둡시다.

좀 더 세월을 건너뜁시다. 홍탁, 이놈의 것이 내가 돈 버는 즐거움이라는 외칠 만하니 술과 멀어졌지요. 삭힌 홍어에 탁주 몇 사발 돌리고서야 목소리 높여 삶의 이유랍시고 주저리 내뱉던 그 부끄러움도 생생한 기억의 엊그제입니다. 낯선 동네에 가면 그곳의 막걸리 한두 잔, 이건 진심일 테죠. 통과의례.


3.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에피쿠로스가 말한다. “만약 내게서 맛의 쾌락을 빼앗는다면, 성적 쾌락을 빼앗는다면, 듣는 쾌락을 빼앗는다면, 아름다운 형태를 보았을 때 느끼는 달콤한 감정을 빼앗는다면, 선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두려움 없이 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이 황금 의자와 호화로운 식탁을 앞에 두고 걱정에 빠져 있는 것보다 낫다.” 쾌락 사다리 맨 위의 만족스러운 욕망이랄까. 그는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며, 올바른 마음가짐만 갖춘다면 아주 적은 양의 치즈만으로도 소박한 식사를 성대한 만찬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손 닿는 곳에 달린 과일이 가장 맛있는 법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읽다가)


4. 다른 말로, 완벽하다


독특하지 않았습니다. 애정을 담아 커피(커피만)를 내리는 직원도 없습니다. 특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충분히 좋음, 다른 말로 완벽했습니다. 동네 허름한 카페, 여러 빵을 굽는 일에 더 애쓰는 곳, 낡은 탁자와 의자, 바랜 듯 낡은 메모지와 사진 몇 장이 벽에 추레하게 걸렸고, 카페 이름은 불란서풍의 근사함, 굳이 기억하려 않았습니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읽다가 간 곳이었기에, 대충 좋음을 충분히 좋음으로, 충분히 좋음에서 충분함을 걷어낸 좋음으로, 그곳에 세 사람 모여 앉아 수다스러운 목소리로 공간 채웠으니, 것도 좋았습니다. 가끔 떠올릴 곳, 자신합니다. 편지가 실린 원고지. 제주에서 구했다는 원고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섬 제주 서귀포 이중섭 거리에서 본 것 같은 기분 좋은 착시 착각입니다.


(2022. 1. 17.)



작가의 이전글 나는 궁금하다, 나는 궁금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