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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oooong Jan 27. 2022

關係論 : 헛수고, 그것도 수고인 것이다


거래


매미 허물도 한약재다
동네 아이들이 그걸 주워오면  
오냐, 애썼다
할아버지가 감초 따위를 나눠주셨다
어쩌다 매미도 아닌 것
땅강아지나
물강구 허물을 가져와도
옜다, 계피 한 주먹
너 또한 수고했다고


지당한 일이었다
까치란 놈 대가리 벗어지게 생긴 날
가시덤불 속 왔다갔다한 헛수고
그것도 수고인 것이다


(심호택 『원수리 시편』 창비)     




재밌게 읽었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등장한 매미 허물, 선퇴(蟬退)라 불렸으니 그 쓰임이 예사롭지 않던 모양입니다. 땅강아지 기억도 다시 떠올리고, 물강구의 본래 이름은 물방개랍니다. 시인의 고향에서 불린 이름 물강구, 더 정겹습니다. 땅강아지, 물방개, 딱정벌레, 사슴벌레, 하다못해  흔하디 흔한 무당벌레는 애꿎은 장난 이상이었죠. 엔간히 더운 여름날의 장면인 듯합니다. 까치란 놈 대가리 벗어질 정도면 폭염주의보가 발령하던 여름방학이 아닐까요.


관계론, 논할 형편은 아니지만 심호택 시인을 읽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살피게 하는 시편이 종종 있습니다. 회한과 반성, 그 기억으로 고스란히 담긴 시편 <똥지게>입니다.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일 시켜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시인이 어머니를 탓함이 아닐 겁니다. 어지간히 말짓하는 녀석에게 거듭 타이르는 어머니의 말씀일 텐데, 그 말씀을 아이가 알아들었을 리가 만무하죠. 요즘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리는, 부모들의 욕심, 아이를 성적순으로 앞세우다 보니 누군가를 비교 대상으로 삼아 사람을 얕잡는 강도가 더 자극적인 현실이죠.

 

심호택 시인의 조부께서 군산에서 한약방과 서당의 훈장 노릇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 서당에서 시인 고은이 배움을 익혔다고 하니, 두 시인의 인연이 각별하다고 밝힌 글이 생각납니다. 시인의 시편에 종종 등장하는 조부의 마음 씀씀이가 분명 남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감초, 약방의 감초입니다. 아이들 수고의 대가로 건넸다고 하니 그 단맛이 어지간히 좋았던 모양이죠. 물론 저도 어릴 적 그 단맛은 잊히지 않았습니다. 계피가 선물이었다니 좀 의뭉한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했음 직한 맛은 아니었을 텐데요. “오냐, 애썼다. 옜다, 수고했다.” 할아버지 그 칭찬에 몸 둘 바 몰랐을 아이들 모습이 스칩니다. 할아버지가 원하시던 건 분명 매미 허물이었는데, 아이들이 그나마 찾은 건 땅강아지 물방구 허물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넉넉한 품을 아이들은 이미 눈치챈 듯합니다. “너 또한 수고했다”라고 두루두루 아이들의 그 마음을 헤아려 살펴주셨습니다. 헛수고, 부지런히 몸을 놀린 수고와 수고의 반복입니다. 헛수고, 수고한 아이와 다르지 않은, 같은 아이의 땀방울입니다. 지당한, 자연한,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관계론, 그저 살펴 헤아리는 그 마음이 처음입니다. 헛수고, 그것도 수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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