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말하노니 한국현대사 앞에서는 우리는 모두 상주이다.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이다. 그곳에 뜬 별들은 여전히 눈부시고 그곳에 핀 유채꽃들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별들과 꽃들은 모두 칼날을 물고 잠들어 있다. (이산하 장편서사시 ‘한라산’ 중에서)
2021: 이산하 시집 <한라산>으로 그나마 제주의 약간을 알았고, 아직 제주는 공부 중이다. 이종형 김수열 시인과 현기영 소설가에 이어 김석범 장편소설과 마주했다. 조만간 소설가 한강의 4.3 이야기(9월 <작별하지 않는다> 제목으로 출판)도 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입원하던 날 시집을 펼쳤고, 퇴원하는 날 새벽 다시 펼친다. 몇 번 더 읽게 될 것이다. 감히 권하고 싶지만, 그 마땅한 이유를 섣불리 꺼내기엔 내 부족이 크다.
2022: 시인은 현재 투병 중임을 알리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곧, 여러 사람의 쾌유를 비는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시인의 서울 모처 반지하방 삶도 듣게 되었다. 시인의 지인이 올린 ‘살아 있는 이를 위한 부조’의 글을 읽었다. “이산하 시인은 대부분 시인들이 그러하듯 또는 그보다 더 안 좋게, 매우 가난합니다. 그 흔한 실손보험도 안/못 들어놓았고 오랫동안 메뚜기 뛰며 살아온 처지로 주머니에 뭐가 있을까요. 시인과 상의해 <조의금>을 선결제하자고 합의를 보았습니다.” 제주에서 요양과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는 약속과 함께. 아직 살아 있는 시인, 더 살아야 할 시인, <한라산>으로, <악의 평범성>으로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살펴보게 했던 이, 응분의 감사함, 그렇게 적은 액수지만 살아 있는 이에게 조의금을 전했다. 시집 서너 권 주변에 선물로 나눴던 것, 그나마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뿐. 그의 쾌유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