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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Poooong Jan 30. 2022

어서 내려오너라, 자캐오야

어쩌면 그 불쌍한 노인이 변장한 당신의 하느님일 수 있습니다


외떨어진, 주변부, 가장자리. 그 거리를 주목합니다. 멀지도, 외따로도 아닌 그 거리. 중심에서 벗어난 듯, 부르면 들릴 그 울림의 거리. 착한 사마리아인의 우화가, 세관장 자캐오가 변장한 당신의 하느님으로 등장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렛 어스 드림,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 코마시 할리크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 이제민 <사랑이 언덕을 감싸 안으니>. 연달아 읽은 세 권의 책입니다. 바라봄, 부름, 들림, 울림 따위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감히 내 안을 꺼내놓기 부족하지만 알렉시스 발데스의 ‘희망’이라는 시 한 편에 내 마음이 깃듦을 고백합니다.


교황님이 이 시편을 옮기면서 쓰신 글의 일부입니다. “이 시는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고,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내가 이 책에서 표현하려고 애썼던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을 묘사한 시입니다. 그의 아름다운 시를 결론으로 삼아, 여러분이 중심에서 벗어나 초월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309쪽)



희망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길들은 엉망진창
그런 아수라장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마음은 찢어지지만
우리 운명은 축복받아,
그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 것입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반갑게 포옹하고,
우리가 친구가 된
행운을 찬미할 것입니다.


그러고는 우리가 잃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우리가 지금껏 배우지 못한
모든 것을 마침내 배울 것입니다.


모두가 고통을 겪은 까닭에
누구도 시샘하지 않을 것이고,
모두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서로를 더욱 동정할 것입니다.


무엇을 벌었느냐보다
모두에게 속한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더 너그럽게 행동하며
훨씬 더 헌신적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지만
너무도 유약한 존재인 걸 깨닫고,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과는 물론이고
우리 곁은 떠난 사람과도 함께할 것입니다.


시장에서 동냥을 구하던 그 노인,
이름은 모르지만
항상 당신의 곁에 있던
그 노인이 그리울 것입니다.


어쩌면 그 불쌍한 노인이
변장한 당신의 하느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분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것이 기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유산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존중할 것입니다.
우리가 얻는 삶을


폭풍이 지나갈 때
나는 주님에게 수줍게 간구합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더 낫게 해 달라고,
주님께서 한때 우리에게 바라던 모습대로.



코로나19 팬데믹, 그 폭풍이 지난 자리의 미래를 생각합니다. 전쟁, 난민, 경제 금융 자본, 비/반민주주의, 이념/주의, 갈등과 혼란. 종잡을 수 없는 엄청난 폭풍의 시간들이 지금-여기, 우리 자리입니다. 그저 살아남았고, 살았음에 감사합니다. 살았다는 다행으로 처음 보는 낯선 이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포옹합니다. 읽은 모든 것을 기억하며 배우게 됩니다. 같은 고통을 겪었기에 질투 나태하지 않고 서로 연민 동정합니다. 서로 안에서 너그럽고 헌신적입니다. 유약함 부족함 나약함 한계를 깨닫습니다.


시장에서 동냥하던 그 노인을 기억합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항상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변두리 가장자리, 외떨어진 곳 그곳에 있던 그 노인이 그립습니다. 어쩌면 그 불쌍한 노인이 변장한 당신의 하느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분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습니다. 항상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길을 지나던 사제가 그랬고, 레위인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한 이들, 그들의 모습과 우리가 닮았습니다. 몇 발짝 건너편에 초주검이 된 강도 만나 이를 못 본 체 자신의 중요한 일을 먼저 했습니다. 이들이 우리임을, 머뭇거림과 주저함이 있는 그 변방, 가장자리에 서 있는 주변인이자 이방인의 모습으로 다가선 우리. 주님을 섬기되 의문이 많던 우리, 주님을 모시되 우리 삶 속에서는 그의 자리가 없었던, 그만큼의 거리를 예수는 알아챘습니다. 어서 내려오너라, 자캐오야.


시장에서 동냥하던 그 노인,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사람, 돌무화과나무에 오른 자캐오, 주변에 머물렀습니다. 가장자리에 섰습니다. 외면했던 그가 변장한 예수님, 하느님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랬습니다. 이제야 알아챘습니다. 다행입니다. 모든 것이 기억이고 유산입니다. 폭풍이 지나갈 때, 가장 작은이 곁을 지날 때, 나는 주님에게 수줍게 간구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죄수와 노숙자에게도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아 우리와 ‘마음 편히’ 어울리며 가족의 일원과 같은 존엄성이 있다는 걸, 그런 마음이 하늘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징표입니다. (258쪽) 진정한 변화, 그리스도가 살아가시는 주변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한때 우리에게 바라던 모습입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우리를 더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너라, 이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대담하게 꿈을 꾸어보자!” (31쪽)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길들은 엉망진창 그런 아수라장에서도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마음은 찢어지지만 우리 운명은 축복받아, 그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뻐할 것입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반갑게 포옹하고, 우리가 친구가 된 행운을 찬미할 것입니다.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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