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이야기 - 1
우리 동네 혼자 사시는 어르신의 생일 아침을 소개합니다.
언제부턴가 생일날이면 사회복지관에서 마련한 점심 생일상을 받았습니다. 잘 먹고, 선물도 챙겨 주는 의례적인 생일상, 감사한 인사를 건네지만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손으로 직접 차린 생일상에 이웃들과 함께한 정이 넘치는 생일상을 차렸습니다.
OO성당 사회복지분과 소속 봉사단원들이 10월 생신을 맞이하는 할아버지 생신 상 준비를 위해 회의를 했습니다. 그 회의에서 이번에는 색다른 생일상을 준비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생신을 맞은 어르신과 장보기부터 함께하기로 하였습니다. 전날 남부시장으로 가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만들 식재료를 직접 골라 사는데 봉사단원이 동행을 했습니다. 장보기를 하면서 남부시장에서 국밥도 한 그릇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 댁에 와서 내일 생신 상을 차릴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어르신의 간섭과 꾸지람이 이어졌고, 간 보는 일도 맡아하셨습니다. 거의 완성된 음식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미역국과 밥은 어르신께서 내일 아침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집 안 가득 고소한 향기가 나는 걸 보니 진짜 잔칫날이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은 봉사단을 배웅하고 부르고 싶은 이웃을 찾아가 생신날 아침을 함께 하자며 초대하였습니다.
이튿날 봉사단 단원이 어르신 댁에 들어서니 갓 지은 밥 냄새가 피어납니다. 찬장 구석에 있는 그릇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걸 보니 새벽 일찍 준비하신 것 같았습니다. 곧이어 옆집 할아버지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옆집 할머니도 함께 오셨습니다.
어르신과 봉사단원들의 손길이 더 분주합니다. 하얀 쌀밥이 오르고 미역국이 밥상에 올랐습니다.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축하 노래, 덕담, 인사가 오갔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남은 음식은 동네 이웃과 함께 나눴습니다. 주고받는 손이 다시 한 번 마주잡고 체온을 나눕니다. 비록 생신상은 조촐했지만 이웃 간의 정이 넘치고 온기가 가득합니다. 어르신이 준비하신 생신 상, 우리가 함께 먹습니다.
이웃들이 돌아가고 어르신은 흐뭇한 표정으로 “먹을 것도 없이 불렀다고 흉이나 안 잡힐란가 몰라.”합니다. 봉사단원도 어르신이 불편해 하실까 노심초사하기도 했지만 정작 즐거워하시는 모습을 보니 다른 해 생신날보다 더 뿌듯했습니다.
전에는 생신 때가 되면 쌀 20kg과 선물을 챙겨서 어르신을 찾아뵈었습니다. 1년에 한 번 찾아뵙는지라 늘 서먹한 인사와 안부, 그리고 의례적인 감사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운이 좋으면 명절 때 한 번 더 찾아뵐 때가 있기도 하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축하도 받고 싶고, 내가 가장 잘하는 반찬을 뽐낼 수 있는 멋진 생일상에서 더 풍성한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성과 예를 다하는 생신잔치, 형식이 아닌 감사와 관계가 이루어지는 생신잔치입니다.
세 번째의 생신잔치가 끝났습니다. 늘 어렵고 긴장되는 생신잔치 준비입니다.
그러나 돌아서는 발걸음을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흐뭇합니다. 다음 번 생신을 입담 구수한 사투리가 정겨운 할머니입니다.
어떤 인연, 만남, 감사가 이어지게 될지 몰라 벌써부터 설렙니다.
(전라북도사회복지협의회 2014 사회공헌 프로그램 공모전 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