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이야기 - 2
집에서 채소를 길러 장에 나와 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돈으로 하면 2만원어치가 전부다. 어느 날 측은지심이 발동한 사내가
“할매, 다 얼마요? 싸주소”
“한 사람한테 2천 원 이상은 안 파요.”
“와요?”
“앉아서 사람 구경하는 것이 낙이고, 팔다 남은 것은 내 저녁 반찬이오.”
(박훈 변호사)
한 어르신은 이혼 후 재혼한 딸의 외손자와 사별 후 직장을 찾아 떠난 아들의 친손녀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비록 가정형편은 어려웠지만 성물방 봉사도 열심히 하는 떳떳한 어르신이었습니다. 조손가정으로 기초수급자세대였지만 본당에서는 “성물방 봉사자 할머니” 또는 “안젤라 할머니”로 불렸습니다.
본당사회복지위원회가 새로이 개편되고 구역장이 사회복지위원에 들어오면서 할머니의 경제적 어려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본당 사회복지위원회에서는 그 가정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고, 매월 10만원의 후원금을 지원하여 도움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점점 할머니의 상황은 변하게 되었습니다. 어엿하고 떳떳이 성물방 봉사를 하시던 “안젤라 할머니”에서 “손자손녀들과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할머니” “성당에서 도와주는 할머니”로 호칭이 바뀌었습니다. 손자손녀를 할머니께 맡기게 된 그 분의 자식들까지 할머니를 위한답시고 그 앞에서 험담을 하십니다.
도움을 받고 있는 형편에 유명메이커 옷과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춘기의 손자, 손녀도 도마에 오릅니다. 그리고 위원회 회의 때는 그 보다 더 어려운 집도 많다면서 앞으로 지속적인 지원을 할지말지 고민을 되풀이했습니다.
김장김치를 나누어 먹던 이웃들마저 그 할머니 집은 복지관에서, 주민자치센터에서, 심지어 성당에서 김치를 주니 본인들까지 줄 필요 없다고 말씀들을 하면서 이웃으로서의 “나눔”마저 끊어 버렸습니다. 매월 10만원 후원금이 할머니의 자존심과 당당한 어르신이 아닌 도움 받는 어르신으로서의 위치를 바꿔버렸습니다.
교회가 진정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는 ‘봉사 공동체’였는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소영 헬레나 / 대구가톨릭사회복지회 제1대리구 본당사회복지협의회 전담 사회복지사)
OOO 할머니는 뇌신경 손상과 녹내장, 그리고 양쪽 무릎관절 수술 후 물리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거동이 불편합니다. 녹내장으로 시야가 좁아져 일상생활에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할머니 집은 마을에서도 제일 높고 외딴곳이어서 평소에도 주민들과의 접촉점이 약한데다 정서적으로도 마을사람들과 만남이 쉽지 않는 할머니입니다.
여러 가지 복지서비스가 필요하다 싶어 밑반찬, 목욕, 청소 등의 재가서비스를 받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바라보는 마을사람들의 시선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그 연유를 알아보니 OOO 할머니가 시어머니를 구박하고 학대하여 마을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유지를 위한 도움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할머니의 사회적 관계망,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의 장점을 찾고 마을 분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구실을 찾고자 했습니다. 농사철이면 마을사람들은 농사를 짓기 위해 할머니 집 앞을 지나 동네 뒷산으로 갑니다. 마을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할머니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서는 일하러 가는 마을사람들에게 준비한 냉수를 나누기를 권했습니다.
할머니는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물 한 잔 권하는 것이 무척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물 한 잔을 권하는 이야기가 마을사람들과 말동무가 되어갔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생수병을 모아다드리고 할머니는 얼음을 얼려서 나누니,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농사지은 농작물이나 반찬 등을 할머니께 나눠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사자의 사회적 관계를 살리는 사회복지기관의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 사이에 흐르는 복지 자연력을 살리니 인정이 흐르는 세상으로 바뀐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작은 물 한 잔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유수상 / 거창효노인통합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