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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욕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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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윙크의사 Apr 02. 2023

필수적이지만 사치로운

세상의 계급을 담는 의 衣, 식 食, 주 住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하지만, 소비 형편에 따라 가장 많은 격차를 보이는 세 가지가 아닐 듯싶다. 경제 수준과 의,식,주의 가격은 비례 선상의 그래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 차이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것이 곧 생활 계급으로 드러난다.


의, 식, 주는 삶에 필수적인 공통적 요인들이기에, 주변 사람들의 경우와 비교하기가 너무 수월하다. 무엇을 먹고 다니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디에 사는지에 뻔히 보이는 계급이 담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부를 과시하거나 혹은 부를 가진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이 세 가지를 일종의 사치재로 활용한다.


특히 외모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여고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젊은 사회인으로 자라오면서, 가장 많은 격차를 느꼈던 것은 ‘의(衣)’ 였다. 돈이 없던 학생 시절, 길거리 보세 상점에 걸려 있던 옷들조차도 몇만 원이 넘어가면 비싸다는 생각에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뒤져서 가장 비슷해 보이면서도 살만한 가격대의 옷을 고르거나 동대문, 명동, 반포의 지하상가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아울렛이나 백화점에서 파는 옷들의 가격은 십만 원은 훌쩍 넘었고, 그런 가격표를 보는 나는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옷이 예쁘다고 해 놓고서, 가격표를 보고는 못 본 척 덮는 엄마의 모습도 내 눈에 보였다. 또래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있는 옷들의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고, 아무렇지 않게 비싼 옷을 입을 수 있는 그들의 경제력이 몹시 부러웠다.


인간의 모든 욕망은 결핍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옷과 쇼핑에 대한 집착은 이런 비교심리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가진 수준에서 최대한 그럴듯하고, 또 잘 포장할 수 있는 옷을 고르는 것이 생존과 자존의 필수 요소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나의 옷장은 결핍으로 수놓아진 수많은 옷으로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옷의 가짓수를 보며, 친구들은 내가 돈이 많은 아이로 오해하기까지 했었다.


가방끈이 긴 탓에, 결핍의 시간도 길어졌다. 옷과 소비재, 물건에 대한 집착도 결핍의 크기와 함께 자랐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색깔별로 잔뜩 구매해야 직성이 풀렸고, 소비의 대담함도 자꾸 커졌다. 명품에는 관심이 없는 척했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명품을 소비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선택의 자유는, 오래 묵은 결핍이 해소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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