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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 Festival Mar 16. 2018

반려동물 연차가 절실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같다


"부장님 연차 좀 쓰겠습니다. 고양이가 수술을 했어요"


이렇게 말하며 결재판을 내밀 수 있는 직원이 몇이나 될까?배우자나 아이가 아파도 눈치 보며 휴가를 쓰는 마당에 하물며 사람도 아닌 동물 때문에 휴가를 쓴다고?

 


뒷다리 사이에 맨살 손을 끼고 있기를 좋아하는 녀석


흔히 동물복지나 권리를 높이자는 주장에 대한 답으로 "사람도 그렇게 못하는데 동물한테.." "사람이 피해보게 생겼는데 동물이 문제냐. "라는 대답들이 돌아오곤 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전제는 "사람이 동물보다 중요하고 우월하다"이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이것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죽었을 때

간호하고 애도할 수 있는 권리를

회사에서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이유는


동물의 목숨이 인간의 목숨과 완벽하게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거나 동물에게도 사람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마음이 휴식과 안정이 필요할 만큼 아프고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리 중에는  동물과 함께 더불어 어울려 살아갈 권리도 있음을 인정받기를 소망한다.

태초부터 그것이 자연스럽고 건강한 방식이라는 공감과  함께.

인간은 동물과의 그 관계에서, 어쩌면 어떠한 타인도 줄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
 그것은 자연스럽고도 존중 받아 마땅한 권리임을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이다.


뱨고프지도 아프지도 않지만 녀석은 기분이 나쁘다. 한껏 세운 마징가귀로 불쾌함을 표현 중이다.


회사에서 경조사 연차를 주는 이유는

실용적 관점으로는 근로자의 상태가 "자리를 지켜보고 있어 봐야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이니까" 일 것이고

도의적 관점으로는그러한 인생의 대소사가 적어도 그 개인에게는 회사 일보다 중요하다는 인정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를 보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이 성숙하고 무르익는 다는 의미를 사회가 공감하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존재하는

그 끈끈하고 강력한 공감과 연대. 그리고 사랑도.

충분히 인간으로서 우리 삶의 의미를 심화시켜준다는 것에 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불과 3년 전 만해도
개나 고양이는 목줄을 채워 마당에서 키우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내가


고양이를 키우며 그 생명이 그 존재가

단순히 먹이를 먹고 배설을 하고

인간에게 애교나 부리며 생존을 이어가면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


기뻐하고 사랑받고 싶어하고 눈치를 보며

때로는 토라지고 질투하며 감사하는 존재임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은, 그리고 고마움은 내 인생을 두 세배는 풍요롭게 해주었다.


인간이라는
너무나 똑똑해서 우월한 존재말고도
무조건적 사랑과 신뢰, 그리고 순수함을 지닌 존재들과 지구상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그 선물을 귀히 여기는 것도
스스로 "우월"하다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의 의무는 아닐지.)



날개는 없지만 천사같은 내 친구. 내 가족인 녀석.

번외편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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