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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울리 Slowly Dec 28. 2023

관심으로도 무관심으로도 사람은 죽었다

무심코 지나쳐버린 순간들




사정이 있어 한 동안 아이 등원을 남편이 맡아 주었다. 어제는 몇 주 만에 내가 하원을 하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나타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아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걸어 나온다. 로비에 있는 큰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한참을 머물며 함께 사진도 찍고 아이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다.




오늘은 종일 속이 허하다. 지금 나가면 차가 밀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마침 여동생이 보내준 음료 쿠폰 기한이 만료되기까지 며칠 남지 않아 대충 속을 채우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저녁이라 디카페인 라테와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주스를 주문했다. 음료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애그샌드위치 하나도 함께 주문했다. 신호대기 중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주문을 진행하다 딸기 음료를 중복 주문해 버렸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작은 실수가 많다. 왜 이리 삐걱되는 건지, 취소가 되려나 생각하며 카페 근처 업무가 끝난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내려서 확인해 보니 공간이 넓은데도 차가 삐딱하다. 다행히 주차장은 한산했고 다시 고칠 기운도 없어 그냥 그대로 아이와 걸어 나왔다. 내 감정이나 컨디션에 상관없이 아이 앞에서는 씩씩하고 웃긴 엄마인 척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다 보면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착잡함이나 슬픔도 곧 잘 숨길 수 있는 어른.






브런치에 썼던 '김혜수와 이선균'이라는 제목의 글이 오늘따라 조회수가 높았다. 대부분이 외부 검색을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이선균배우와 관련한 새로운 기사가 떴구나 짐작했다. 내가 쓴 글은 배우의 개인적인 이슈와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대한 압박감에 배우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에 관한 글이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시금 찾아보고 있는 것 같다. 특별히 좋아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의 연기와 방송활동을 보았다. 최근 그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들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은 행운인 동시에 저주가 아닐까 하고.




우리는 누군가의 완벽함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 그러다가도 결점이 보이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고 심지어 혐오하기 시작한다. 사랑과 증오가 종이 한 장 차이라고는 하지만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작가님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를 죽인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타인에 대한 도를 넘은 관심, 상대의 감정이야 어떻든 그저 내가 궁금한 것을 캐내고 마는 심보가 아빠이자 남편인 그를, 누군가에게는 생명보다 더 귀했을 그를 다시는 돌아올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낮에 친구로부터 톡이 왔다. 그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냐는 내 말에 친구는 난대 없이 배달된 피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 건넛집에서 피자를 시켰단다. 거기 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피자박스가 일주일 내내 그 집 앞에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인가 했는데 콜라 1L도 문 앞에 계속 있었다고 했다. 그 집은 친구 집 현관과는 떨어져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러 갈 때마다 슬쩍 보이는 피자박스를 보며 의아해하다 혹시나 해서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제보를 하게 된 것이다.




하루가 지나 다시 확인해 보니, 119와 경찰이 다녀 갔고 그 이웃집 사람은 이틀 전쯤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다. 피자박스가 일주일이나 문 앞에 놓여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고인 되신 분은 혼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며칠 동안 생명을 붙들고 있다가 불과 이틀 전에 돌아가시게 된 것이다. 친구는 이야기를 전하며 바로 옆집에서도 그 피자박스를 봤을 텐데 하고 안타까워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식사라도 하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부질없는 말로 서로 놀란 마음을 위로했다. 친구의 이웃이 겪은 일이 나와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착잡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안다. 내 한 몸 먹여 살리기도 어려운 세상이다. 관심이 필요한 곳에 관심을 주는 일은 점점 더 모호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인스타그램 숏츠에 나오는 난민 아이들의 영상을 대충 훑어보고는 마음이 불편해져서 되려 빠르게 스킵해 버린다. 마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오히려 쉽게 외면해 버리는 것이다.




어떤 것에 신경을 끄고 무엇에 더 관심을 두고 살아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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