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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대가리 Mar 09. 2020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 글들을 다시 써보자

영화 <족구왕>

서점에 갔다. 책을 고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베스트셀러는 왠지 손이 안 가고, 숨어있는 명작을 찾고는 싶은데 사놓고 보니 손이 가지 않는 책이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여러 권의 책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다 다시 내려놓는 일이 반복됐다.

대학생 때는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학교 도서관에서 무작정 대출을 하고 봤다. 남미에 관심이 있으면 남미 관련된 책들을 대여섯 권씩 빌려 쌓아 두고 읽을 수 있었다. 유명한 도서들은 예약을 걸어놓으면 내 차례에 문자가 왔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니 독서 편식 현상이 심해졌다. 가뜩이나 머리 아프고 시간 없는데 잘 들어오지도 않고 흥미도 없는 책을 붙들고 있기가 싫었다. 점점 더 검증된 작가, 검증된 책만 찾게 되었다. 그러니, 두 시간을 서점에 있어도 책 한 권 고르지 못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돌아보니 글을 쓰는 행위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심심할 때마다 올리던 ‘가난한 대학생의 남미 여행기’로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여행기를 올리며 글 쓰는 일의 기쁨을 누렸다. 그때는 좋아요가 없어도, 구독자가 적어도 꿋꿋이 글을 썼다. 조회수가 몇이 나올까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여행기 연재가 끝나고도 다양한 방면으로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조금 실험적인 형태로도 글을 써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재밌을까? 싶은 평범한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 종종 영감을 주는 책입니다. 박정민 배우님의 <쓸 만한 인간>

감사하게도 이후에 남미 생활기를 연재하며 독자분들이 많이 늘었다. 글을 올릴 때마다 다음 메인에, 또 다른 포탈에, 페이스북에도 소개되며 조회수가 쌓여갔다. 그렇게 노출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읽는 글은 어떤 글인가에 관심이 갔다. 계속해서 그런 글을 쓰고 싶었고, 클릭이 많이 되도록 제목 작성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남미에서 돌아오고 나니 그런 글을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소재가 떨어지며 능력의 한계도 드러난 것이다. 일상을 소재로 글을 쓰려니 여행기를 쓸 때 나왔던 포텐이 좀처럼 발현되지 않았다. 특히, 작년 여름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에 쓸 말은 많아졌지만 SNS에 올릴 만한 글감은 점점 줄어갔다. 이런 글은 써봤자 조회수도 얼마 안 나오겠지, 지레 겁먹고는 이내 수많은 경험과 생각을 일기장 속에만 묵혀두었다.


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두려웠다. 예전에는 분노하는 지점이 있으면 논리가 없어도 우선 글로 그 분노를 표출하곤 했는데, 이제는 분노해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고, 대안이 없는 비판은 또 다른 비판만 사는 것이라고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비판하던 사회의 일원이 되어 그 사회가 잘 굴러가도록 열심히 수레바퀴를 굴리는 회사원이 되어있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직장에 잘만 다니고 있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 많냐며,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까 두려웠다.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만섭은 스타일도 영 구리고 아직 군인 티를 채 벗지도 못한 복학생이다. 남들이 취업과 공무원 시험 준비에 몰두할 때, 토익 한 번 본 적 없는 순수한 영혼이다. 그런 그가 좋아했던 것은 족구였다. 총장과의 대화 시간에 다른 이들이 등록금과 취업률에 관해 논할 때 “족구장을 다시 만들어주세요”라고 당당히 건의하는 인물이다.

지금은 대스타가 되신 <족구왕> 안재홍님.

영화에는 ‘형국’이라는 조연이 나온다. 만섭만큼 족구에 미쳤었고 실력도 있었으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족구를 접고 삼 년째 공무원 시험에만 몰두 중인 인물이다. 형국이 만섭에 물었다.


“만섭아, 너에게 족구는 뭐냐?”

만섭이 잠시 생각하고는 답했다.

“..... 재밌잖아요.”


그렇지. 나에게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자리 잡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미래에 돈벌이가 되는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하고 싶어. 그니까 할래” 그게 다였다.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다 하며 살 수는 없구나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성장일까. 하고 싶던 수많은 것들이 멀어져 가는데 그 자리에는 하기 싫어도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 채워졌다. 돈이 되지 않는 수많은 “하고 싶은 것”들은 철없음의 증거가 될 뿐이었다.


혼자 감춰두었던 일기장을 주섬주섬 열고,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 않는 글들을 다시 써보려고 한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동네 도서관이 다시 열거든 흥미가 가는 책들을 무작정 빌려다가 읽어볼 생각이다. 인생에 큰 도움이 못 되더라도, 타인에게 비웃음을 살지라도, “재밌잖아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는 마음. 그 감각을 잊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시작해야겠다.


물론 이 글을 쓰면서도 제목을 어떻게 자극적으로 뽑아볼까, 쭉 고민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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