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 때 엄마가 물었다. “태권도 다닐래? 피아노 다닐래?”
태권도장에 갔는데 발차기를 빵빵 해대는 또래 아이들의 모습이 무서웠다. 내 선택은 피아노였고, 그날 이후 인생에서 운동은 점점 멀어져 갔다. 학창 시절 내내 축구공 한 번 제대로 차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유도를 배운다. 작년에 취업준비를 하며 유도를 시작했다. 내 의지는 아니었다. 누나가 살을 빼겠다며 유도를 등록했는데, 돈을 내줄 테니 같이 나가자며 꼬드겼다. 공짜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문을 두드렸고, 그렇게 누나는 낙법을 하루 배우더니 이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두드렸던 문을 슬며시 닫고 나갔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크게 소리 지르며 온 몸을 활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에 또 겁을 먹었다. 어째, 9살 때랑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게다가 유도장은 중, 고, 성인이 같은 시간대에 수련을 한다. 10살 넘게 어린 친구들에게는 말 거는 것부터 쉽지 않은데, 몸을 부대끼며 도움을 받아야 한다니. 운동 문화도 낯설고 몸도 뻣뻣한 초보자가 선택하기에 분명 쉬운 운동은 아니었다. 그래도 우선 한 달을 버텼다.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낯설고 어색한 기운을 앞섰기 때문이다.
팔 동작을 익히면 다리가 어색하고, 다리를 익히면 다시 팔이 어색해지는 악순환을 반복했다. 그렇게 다닌 지가 두어 달, 심사를 봤다. 노란띠가 되기 위해서는 4종 낙법과 업어치기, 기본 굳히기 등을 익혀야 한다. 그래도 노란띠는 따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고 남아 추가 연습을 했다. 키가 180이 넘는 열다섯 살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스물여덟이라는 내 나이가 부끄러웠지만 낯가림 없이 적극적으로 도와준 이 친구 덕분에 흰 띠를 벗을 수 있었다.
낯선 유도장에 익숙해져 친해진 사람도 생길 즈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취업 준비생의 신분이 끝났다. 나는 곧바로 배낭을 싸 스페인 순례길로 떠났다. 돌아오니 신입 연수가 이어졌고, 현업에 배치되니 야근과 회식, 각종 밥 약속에 들떠 한동안 유도를 잊고 살았다.
회사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고심 끝에 선택한 회사였으며 기업 문화도, 팀원들도 좋았다. 더 이상 아메리카노 한잔에 주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았다. 일 잘하는 선배들이 많은 덕분에 커리어 면에서도 배울 점은 수두룩했다. 영업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고객을 대응하는 방식은 선배들마다 조금씩 달랐고, 각자 훌륭한 방식으로 자기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을 닮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 심심했다. 우리는 모두 4년제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하여 취업 시장을 뚫고 성공을 일구어 온 사람들이었다. 다들 비슷한 전공으로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었다.
회사는 각자 살아온 인생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만큼 여유로운 곳이 아니었다. 일은 늘 많았고, 이슈 하나를 해결하면 곧 다른 이슈가 터졌다. 사적인 대화는 지양되었다. 실은 나부터가 우리 회사 동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크게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주말에 팀 단톡방 알림이 뜨면 웬 주말에 카톡이냐며 일단 인상부터 찌푸리고 봤다. 반년 정도 다니고서 회사는 원래 그런 곳이려니, 생각하게 됐다.
취업준비를 할 때는 하루빨리 내 전문 분야를 만들어 커리어를 쌓고 싶었는데. 그 말은 곧 다양성 없이 무미건조한 일상이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전문 분야를 만들어가기에 스물여덟의 나는 아직 어리며, 세상을 모르고 호기심도 너무 많았다. 일은 일대로 전문성을 넓혀가되 그 밖의 영역에서 새로 배우며 시야를 넓히고 나와 배경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갈증이 커져갔다.
이때, 유도가 다시 떠올랐다. 관장님께 카톡을 보냈다.
“관장님, 저 유도하러 가도 돼요?”
“당연히 되죠. 오늘 오세요!”
그렇게 다시 유도장에 나간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여전히 유도는 낯설다. 퇴근 후, 유도하러 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지만 매번 유도장으로 발걸음이 향한다. 참 이상하다. 뭣하러 정신과 육체의 괴로움을 감수하며 운동을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낯 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기 때문이라. 내가 살면서 언제 10살 가까이 차이 나는 친구들과 맞대 보겠는가. 운동 앞에 한없이 소심한데, 어렵사리 도움을 청하는 굴욕(?)은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맛보겠는가. 지금까지 일구어온 삶의 궤적들, 이를테면 대학이나 직장, 이런 것과 상관없이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한없이 겸손해질 수 있는 경험은 유도를 통해서 가능해졌다.
또 다른 이유는 유도가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되는 덕분이다. 운동 자체가 즐겁다기보다, 유도를 하는 동안 그 어떤 복잡한 생각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보통 퇴근 후에는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게 된다. “사무실 들어가면 A건은 O대리님과 이야기하고, B건은 고객사에 메일을 쓴 뒤 전화를 한번 드려봐야겠다.” 잔잔한 상황에서는 일의 on/off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유도를 할 때는 “뇌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움직이는 팔다리를 어찌 컨트롤할까, 나는 배우는 속도가 유독 느린데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나, 오늘 자유 연습은 누구한테 잡아달라고 해야 하나, 학생들에게 부탁하면 나를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빨리 실력이 늘었으면 좋겠다, 아 온몸이 쑤신다, 괴롭다” 생각하다 보면 늘 그렇게 한 시간이 흘러있었다.
야근과 출장, 회식이 겹쳐 자주 가지는 못한다. 지난달에는 등록하고 5번밖에 못 갔다. 안타깝게도 실력은 늘 흰띠와 노란띠 사이 어디쯤에 머물고 있다. 팀원분들과 점심을 먹던 어느 날, 퇴근 후에 뭐하냐는 질문에 유도를 배우고 있다고 하니 과장님 한분이 물었다.
“유도? 배워서 누구 업어 칠라고?”
“후.. 업어칠 사람은 많죠. ㅎㅎ”
“아, 미안..ㅋㅋㅋ”
유도가 끝나면 늘 하는 생각은 “더 어렸을 때 배워둘걸”이다. 사회에서 직함이 높아지고 일구어 놓은 것이 많을수록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는 더 어려워질지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귀찮아 질지 모른다. 그러나 평생 새로운 것을 배우며 살고 싶다는 좌우명에 맞게 그 시점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 “더 어렸을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소박한 믿음을 갖고 살고 싶다. 그것이 소심한 직장인이 퇴근하고 유도장을 향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