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가 끝난 2016년, 안양 교보문고였다. 한참 헤르만 헤세, 괴테 등 독문학 뽕에 취해있던 때라 세계문학전집 코너를 기웃거리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혹시, XX 중 나오지 않았어요?”
“어? 맞는데.. 누구..?”
“나 기억 안 나?”
“어.. 어!! 얼굴은 기억나는데 이름이..”
10년 만에 만난 C는 장난기 가득했던 얼굴 그대로였으나 사뭇 다른 사람 같았다. 2006년, 중2 때 우리는 같은 반, 같은 무리에 속했었다. C는 드럼을 쳤다. 당시에도 드럼스틱을 갖고 등교했고, 중학생에게는 생소한 연습실 같은 곳도 드나들었다. 특유의 유머로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듯 하나, 어떤 수업이든 선생님과의 케미를 자랑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친구였다. 모든 선생님이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중학교 이학년의 나는 내향성이 폭발하던 때였다. 남들보다 사춘기가 좀 늦게 온 탓에 외모에 자신감도 없었다. 당시에는 중2 정도 되면 잘 놀고 못 노는 무리로 나뉘었는데 나는 특별히 친한 친구도 무리도 없었다. 그런 주제에 소위 “잘 나가는”무리에 속하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친구를 따라 ‘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그전에도 노래방은 좋아했으나, 또래 남자 무리들과 함께 가는 건 처음이었다. 어떤 기회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 나도 드디어 무리가 생기는구나, 요즘 말로 ‘인싸’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벅찼다. 정작 두 시간 동안 노래는 두어 곡 불렀나?
그 날 이후, 나에게도 무리가 생겼다. 그 무리에는 C도 있었다. 더 이상 누구와 급식을 먹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점심 종이 울리면 “밥 먹으러 가자!” 고 먼저 말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싸이월드에 “ㅊㅣㄴ9♥” 같은 오그라드는 멘트로 사진을 올릴 수 있었다. 폴더 이름은 “2006, 우리 애들”. 그 나이 때 우리에게 “우리 애들”이라는 정체성은 얼마나 중요했던가.
주말에 같이 시내로 영화를 보러 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방과 후에는 집으로 들어가 공부만 하던 내가 노래방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됐다. 친구들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를 처음으로 배웠다. 아, 우리 동네 아이들은 중학생 때 술 담배는 잘 안 했으니, 뭐 거창하게 논 것도 아니었다. 그저 또래들 모두 갖는 소소한 즐거움을 나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은 엄청났다. 주말에 같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친구들. 공부를 핑계로 컵라면을 먹으며 시시콜콜 떠들 수 있는 친구들.
그런데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애들”이라 믿었던 친구들이 조금씩 나와 멀어졌다. 이유는 몰랐다. 처음에는 주말에 같이 놀러 가잔 말을 안 했다. 나중에는 노래방에 같이 가는 빈도가 줄었다. 밥은 같이 먹었지만 누구도 말을 먼저 걸지 않았다.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반 체육대회 날, 섭섭함을 드러내기 위해 무리에서 떨어져 따로 앉았다. 근데 아무도 이쪽으로 와서 같이 앉자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 저들은 내가 없어도 아주 즐겁게 잘 논다.
공고했던 “우리 애들”에 대한 믿음은 깨졌다. 무리 중 가장 친했던 아이와 심하게 싸우고 나서는 밥 먹으러 갈 때도 쉽게 끼지 못했다. 후회했다. 차라리 싸우지 말 걸. 그 아이랑이라도 친하게 지낼 걸. 후회하면 할수록 무리는 나와 멀어졌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다시 2016년. C의 손에는 드럼스틱 대신 밀란 쿤델 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들려 있었다.
“이 책, 너무 어렵지 않니? 나는 군대에서 읽다가 포기했는데.”
“응, 어려운데 재밌어. 사실 내 꿈이 집에 서재를 만드는 거야. 거기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다 꽂아놓을 거야. 지금부터 하나씩 읽고 있어.”
“책을 많이 읽나 보네?”
“시간 날 때마다 교보문고 와서 읽어. 그러다가 마음에 들면 사기도 하고.”
“요새도 드럼 쳐? 예전에 음악시간에 드럼스틱으로 네가 등 뚜들겨주면 그게 그렇게 시원했는데.”
“당연하지. 인디밴드 활동하고 있어. 유튜브에 OO치면 나와.”
C는 그 무리의 핵심중 한 명이었지만 나는 C와 1:1로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특유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와 농담이 익숙해서일까, 문학을 가까이하는 C의 모습에 잠시 괴리감이 들었다. 하긴, 10년이나 지났으니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하지. 그나저나 드럼도 치면서 여러 공부를 병행하는 모습이 참 멋있다, 생각하던 차에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땐 우리가 참 어렸지.”
“응?”
“10년 전에 말이야. 우리 무리에 리더였던 L 있지? 걔랑 나랑 그런 얘기 했었어. 우리 무리가 너무 커진 것 같다, 쳐낼 애들은 좀 쳐낼 필요가 있겠다고.”
“아. 그랬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다 같이 재밌게 놀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너를 그렇게 내몰았어, 라는 말은 없었지만 10년 동안 잊고 지낸 궁금증이 풀렸다. 그래, 그냥 그런 등쌀을 못 견뎌 나는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 후로도 특정한 무리 없이 그저 무리에 속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제 와서 10대 시절의 암흑을 그들 탓으로 돌릴 생각은 없다. 또 그들 때문에 나의 10대가 우울했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그 외에도 사춘기 소년이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다. 내쳐졌으면 내칠만한 이유가 있었겠거니. 시간이 지났고 20대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탓을 해야 할 일보다는 나의 잘못이었거니, 하며 흘려보내는 게 더 마음 편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있다.
시간 여유가 많은 요즘, 낮 시간에 밖을 나서면 교복 입은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무리 지어 세상 즐겁게 웃는 이들도, 홀로 이어폰을 꼽고 독서실로 향하는 이들도, 모의고사 문제집을 가득 들고 어두운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이들도 보인다.
“너희들 때가 가장 좋은 때야”라는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왔다. 그러면서도 평범한 10대가 바라보는 전부일 가족과 친구들, 그 작은 세상 속에서 얼마나 깨지고 상처 받으며 마음 아플까 생각해보면, 너희들 때가 참 힘들 때지 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해도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을 잠시 생각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