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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Feb 04. 2020

생은 온 힘 다해 받들고 모셔야 한다

허공에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계속 노력해야만 견딜 수 있었다

한 여자가 벽난로 앞에 무너져 간신히 몸을 가누고 있다. 두 손으로 난로 선반을 잡고 힘겹게 버티고 있다. 여자는 무엇을 견디고 있는 것인가, 푹 숙인 고개가 바닥가지 꺼질 것 같다. 깊디깊은 생각 안으로 들어간다. 여자의 얼굴은 난로 안쪽을 향한다. 얼마나 오래 저리 있었을까. 통나무에는 이제 불이 꺼지지 않았으려나.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면 여자가 저렇게 가까이 기대지는 못했을 테니. 몸은 마음을 반영한다. 불타는 열정은 스러졌고 인생의 온기는 사라졌다. 치렁치렁한 얇은 옷이 한기를 느끼게 한다. 얇은 옷감이 몸을 타고 흐른다. 흠뻑 젖은 듯 몸의 굴곡을 따라 착 달라붙었다. 온몸에서 슬픔이 뚝뚝 떨어진다. 이 작품은 「깊은 생각(La profonde pensée, Deep in Thought)」혹은 「내면성(Intimité)」이라 불리는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의 작품이다.

 「깊은 생각」은 클로델의 또 다른 작품 「난롯가에서의 꿈(Rêve au coin du feu)」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사한 재료와 장소뿐 아니라 여자의 틀어올린 머리와 발목까지 내려온 실내복이 무엇보다 유사하다. 자연스레 여자의 슬픔과 공허가 연결된다. 무엇이 전후여도 상관없다. 난롯가에 앉아 꿈을 꾸던 여자가 모든 것을 잃고 난로 앞에 무너져 오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난로를 붙들고 어떻게든 슬픔을 견뎌야 했던 여자가 힘없이 난로에 기대 온기를 쬐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어느 쪽이든 간에 여자의 꿈은 무너져 내렸거나 무너져 내릴 것이다. 여자는 얕은 온기에라도 기대야 할 것이다.


 로댕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인생을 알거나 모르거나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마음이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깊은 생각」은 카미유 클로델의 고독한 창작기(1893~1905)에 제작된 작품이다. 


1883년 로댕의 문하에 들어온 카미유 클로델은 조각에 대한 열정과 예민한 손끝, 민감한 예술세계의 촉수를 공유한 스승에게 푹 빠져들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더욱 애틋하고 강렬한 법이다. 1885년 로댕의 정식 조수로 채용되면서부터는 두 사람 사이에 폭발적인 사랑의 불길이 일어났다. 두 예술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누구도 막지 못했다. 치명적인 사랑은 서로를 치명적인 기쁨으로 파괴한다. 슬프게도 더 크게 망가진 것은 젊은 여자였던 클로델 쪽이었다. 


 클로델은 1892년, 원치 않았던 유산 이후 로댕의 곁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클로델의 독립은 용기 있었지만 고독했다. 클로델은 로댕의 영향력을 벗어나기 위해 창작 활동에 열성적으로 매진한다. 특히 1895년부터는 클로델만의 독창성이 크게 드러나 로댕의 꼬리표를 극복한 듯 보였다. 작곡가 클라우드 드뷔시Claude-Achille Debussy와 잠시 사랑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역시 로댕과 상황은 같았다. 드뷔시에게도 오랫동안 동거한 연인이 있다는 것을 클로델은 견딜 수 없었다.  「나이 든 엘렌(The Old Helen, 1882)」, 「열여섯 살의 폴(Paul Claudel at age 16, 1884)」, 「샤쿤탈라(Sakountala, 1888)」, 「왈츠(Waltz, 1896)」등 불같은 고통을 담아 만든 작품은 호평을 받았다. 1897년, 옥으로 만든 「뜬소문(Les Causeuses)」을 샹 드 마리스의 살롱에 출품해 성공하고, 1898년 로댕과 완전히 결별하고서는 로댕이 자신의 영감을 훔쳐 갔다는 고통 속에 괴로워한다. 실제 클로델의 「사쿤탈라(Sakountala, 1888)」와 로댕의 「영원한 우상(The Eternal Idol, 1889)」은 비슷한 면이 있었으며, 심지어 클로델의 「클로토(Cloto, 1893)」가 감쪽같이 사라진 후, 로댕이 너무나 흡사한 「한때는 아름다웠던 투구 제조공의 아내(She Who Was the Helmet Maker’s Once-Beautiful Wife, 1887)」를 발표했다. 1903년의 전시에서는 미미하나마 “자연을 거부한 혁명, 여성 천재”라는 호평도 받는다. 보수사회와 언론은 배경 없는 젊은 여자의 작품을 인정하지 않았다. 작품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며, 좋은 작품이라면 어떻게든 인정받게 될 거라 생각한 클로델의 확신은 현실 앞에서 녹록치 않았다. 남성 연장자 로댕이 주류였던 미술 세계에서 젊은 여성 신인인 클로델은 빛을 보기 힘들었다. 로댕은 클로델의 재능이 자신의 이름과 연결되는 스캔들이 불편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압력을 가해 클로델의 작품 활동을 방해했다. (한편 로댕은 스캔들이 연결되지 않는 방면으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그 방향이 애매해서 두 사람의 오해는 더욱 깊어졌다.) 클로델은 더 노력해야 했다. 허공에 손을 휘젓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계속 노력해야만 견딜 수 있었다.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깊은 생각 혹은 내면성)La profonde pensée or Intimité」 

 1905년, 화랑에서의 전시가 실패하자 클로델의 마음은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클로델은 1906년, 칩거 생활에 들어간다. 유일한 의지였던 남동생 폴 클로델Paul Claudel이 결혼해서 외교관 업무로 중국으로 떠났기에 인간관계에 미련도 없었다. 1909년, 조현병調絃病 증세가 발생했다. 1913년,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클로델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클로델을 정신병원에 보냈다. 클로델은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었고 의사 역시 그 의지를 독려했지만, 가족은 클로델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신병원에 방치했다. 무려 30년간! 클로델은 수용생활을 해야 했다. 단 한 점도 작품은 만들지 않았다. 쓸쓸히 세상을 떠난 1943년까지 클로델은 고독하고 절망했다. 무엇에든 기대고 싶었지만 어디에도 기댈 수 없었다. 그녀는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바로 이 작품이 허공을 받들어 모시는 것처럼 보였다. 가혹한 생이었다. 


 1951년에 카미유 클로델의 첫 회고전이 성사된다. 사망 후 8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클로델의 작품은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해 간다. 1980년대에 이르러 카미유 클로델은 작품성 있는 화가로 인정받는다.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도 이제는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89년에 개봉한 브루노 뉘땡Bruno Nuytten 감독의 영화, 《카미유 클로델》는 대중에게 그녀를 환기하는 데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클로델 미술관 큐레이터의 말을 빌자면 “클로델은 활동 시기는 짧지만 자연주의에서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발전을 성취한 매우 중요한 예술가”이다. 슬프게도 클로델은 정신적 고통과 회한 가운데 자신의 작품 대부분을 깨어버렸기에 남아 있는 것은 90여 점뿐이다. 


 「깊은 생각」만큼 카미유 클로델의 절망적인 인생을 잘 드러낸 것은 없지 않을까. 작품은 여러 형태로 남아 있다. 브론즈 단일형으로 제작한 1898년 작품과, 벽난로는 대리석으로 인물은 브론즈를 혼합해 만든 작품, 벽난로 없이 허공을 짚고 있는 작품의 형태가 그것이다. 벽난로를 치우면 여자의 모습은 달리 보인다. 가렸던 팔이 드러나는 것만으로 작품은 새로워진다. 이러한 작품의 형태로 미루어볼 때, 마지막까지 남은 여자의 포즈, 허공을 떠받들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클로델이 끝까지 남겨야만 했던 모습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 


 난로에 기대 고개를 숙인 여인을 보아도 마음은 움직인다. 기댈 난로조차 없는 여자를 보면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볼 때 ‘깊은 생각’ 안으로 스며든 ‘더 깊은 무게’를 생각한다. 이제 여자는 어딘가에 기대지 못한다. 기댈 곳이 없는 이 여자는 오히려 세상을 떠받들어야 한다. 이제 세상이 여자에게 그 무게를 기대는 격이다. 여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과중한 무게를 받든다. 생의 무게를 잴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다. 카미유 클로델이 완전히 무너지기까지 기를 쓰고 그러하였듯이, 여자는 생을 떠받든다. 


 살다 보면 정말이지, 못 견딜 것 같은 날이 있다. 조금 쓸쓸하거나 아픔이 스치는 날 정도는 있지만, 대개 ‘이 정도는 견딜만 해’라며 담담하게 일상을 유지한다. 일상을 유지하는 안정감은 성숙의 지표라며 자부심도 느낀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했던 어느 한 날, 예상치 못했던 한 톨 슬픔 하나를 만나 사람은 꼬꾸라진다. 담담함이 다 무너져 넋을 잃는다. 입을 꼭 다물고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 날, 누가 말만 걸면 ‘못 견디겠다’며 하소연하고 싶은 날, 누가 툭하고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날, 어느 순간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하는 척 열을 식혀야 하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가능한 조퇴하고 싶다. 일상을 유지하기가 무리다. 잠시 일상을 뒤로하고 나 자신을 가장 먼저 위해 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이 된 것 같은 이 마음을 달래야 한다. 열심히 살아가느라 ‘이 정도쯤이야’라며 둔감해진 감각을 위로해야 하는 순간, 자신과 인생의 무게에 무릎 꿇는 순간이다. 


 아무리 오래 버텨온 건축물도 벽돌 한 장이 비끗하면 무너져내리는 법이다. 단 한 방울의 물 때문에도 종이는 찢어지는 법이다. 생의 무게는 인간 위로 한 겹 한 겹 쏟아진다. 카미유 클로델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삶은 그렇게 거대하고 가혹하다. 어떻게 살아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허상이다. 인간이란 껍데기는 언제든 어이없이 무너질 수 있다. 저 재능 넘치고 아름다운 카미유 클로델조차 쉽지 않았다. 그토록 얄궂어 그러하므로, 생은 온 힘 다해 받들고 모셔야 한다. 목숨이 붙은 한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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