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영혼을 닦고 또 닦는다.
자화상으로 역시 유명한 러시아 화가 지나이다 세레브리아코바(Zinaida Serebriakova, 1884~1967)의 대표 자화상은 무엇일까요?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명물, <화장대에서(1909)>라고 모두가 손 모아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한껏 물이 오른 아름다운 25세의 자화상 말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여자입니다. 젊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활달함과 기품의 교태(交態)적인 매력까지 가지고 있으니까요. 타고난 숙녀의 기운이 그녀에게 넘쳐흐릅니다.
그러나 세레브리아코바의 나이 서른셋,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집안은 산산조각 납니다. 열아홉에 결혼했던 소중한 남편은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고 남은 자녀 넷과 병약한 모친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 혼자 수많은 가족을 부양하기엔 버겁습니다. 그림으로 돈 벌기는 남자도 쉽지 않았습니다. 울면서 품을 팔고 돌아와 가족을 먹이고 포장지 뒤에다 그림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그녀는 1924년, 가족과 멀리 떨어진 프랑스로 가서 돈을 벌기로 했습니다. 미술의 나라에는 좀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치가 프랑스를 지배했을 때에는 러시아인(당시에는 소비에트 연방)이라 강제수용소로 끌려갈 뻔도 했습니다. 결국 시민권을 포기했습니다. 죽는 날까지 고향에는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여든이 넘어서야 화가로서 크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1956년, 72세의 자화상은 세레브리아코바가 이 모든 산전수전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입니다. 자화상을 완성한 다음 해인 1957년, 드디어 소련 정부는 그녀를 초청하기 때문입니다. 아직 본인의 고난이 언제 끝맺을지 모르는 시절, 그 시절에도 세레브랴코바의 얼굴은 깨끗합니다. 삶의 더께가 그녀를 망가뜨리지 못했습니다. 찌듦 없이 맑고 투명한 할머니 화가의 얼굴은 진심으로 빛납니다.
드라마 <한번 더 해피엔딩> 3화에서 권율은 자기 이상형을 만났다며 몇 번이고 말한다. 자기 이상형은 '산전수전 겪은 맑은 여자'라며. 퇴직 걸그룹 출신에 한 번 결혼하고 돌아온 맑은 여자를 큰 눈을 뜨고 반겨한다. 딱히 좋아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남자 배우를 좋아해서도 아니다. 저 문장 하나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대답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맑은 여자' 나는 꼭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온라인의 한 게시판에서 온실 속 화초 같은 여자와 산전수전 다 겪은 여자 중에서 어떤 여자를 만나고 싶냐는 설전이 있었다. 거기에 달린 수많은 댓글 대부분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산전수전 겪은 여자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의견 쪽으로 모였다. 고난을 겪으며 지혜는 얻었을지 모르나 너무나 억척스러워지고 자기 방식에 대한 고집이 세어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의심과 불안이 얼굴에 밴 상대를 마음 편히 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건 꼭 여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남녀를 바꾸어도 똑같다. 함께 하는 사람으로는 철이 없이 해맑아 본인이 짊어져야 할 역할이 늘어나더라도 가시 없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만큼 사람은 편안함을 추구한다. 타인의 짐을 굳이 져 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기꺼이 져주고 싶은 마음이 그래서 사랑이다.
참 운명이 잔혹하다.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어린아이의 하얀 얼굴을 상하지 않은 채 살고 싶은 건 누구나의 소망이지만, 꼭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을 운명은 더욱 괴롭힌다. 내가 너를 믿기에 이러한 고난을 준다고. 이기지 못할 시험이 아니니 한번 겪어 보라고. 참으로 잔인하다. 눈물 가득한 얼굴을 닦고 일어선다. 다시 울면서 그녀는 이번 어려움을 넘어선다.
굴곡을 겪으려고 겪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굴곡이 다가와 어쩔 수 없이 넘어서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눈물 골짜기를 건널 때마다 다음 골짜기를 대비하는 사람은 없다. 반기려야 반길 수 없는 눈물 골짜기를 지날수록 사람의 영혼은 투명해진다. 그리고 남기는 투명한 흔적. 그게 무엇이든 우리는 무언가를 남긴다. 적어도 태도만큼은, 꼭 남기고야 만다.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다 버리고 단 하나만 남긴다면 디그니티(Dignity)를 남기고 싶다. 품위, 품격, 위엄, 자존 등으로 해석되면서 고상함, 우아함, 그리고 자존감처럼 도덕과 감정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단어. 나는 이 단어를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맑음의 정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기본적으로 그 속성이 더러운 꼴이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병원에서 하는 일은 아이를 씻기는 일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 우리가 하는 일은 몸을 씻는 일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더러워지고 곧 냄새가 난다. 하물며 세상에 나가 계속 활동하게 되는 인간은 오죽할까. 더러운 꼴을 매일 보고 겪게 되는 인간은 오죽히. 우리는 매일 더러워지고 씻는 일을 성실하게 꾸준히 한다.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매일 씻고 닦는다. 씻는 일이 게을러지면 자연스레 냄새가 나게 된다. 굳은살처럼 피부와 내장이 상하게 된다. 그래서 나의 억울함도, 나의 악도, 나의 고통도 매일 씻어 말갛게 해야 한다. 팔자가 더러운 것도 속상한데 박박 씻는 일도 더 잘해야 한다. 진짜 억울하다. 그러나 닦으면 어떠한 삶의 태도가 생긴다. 살면서 끝까지 닳지 않아야 할 것들, 살면서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할 것들을 지키는 선이 생긴다. 이것만큼은 자랑해도 괜찮다. 숙녀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니.
그 더러운 꼴을 다 보고 더러운 오물을 헤쳐가며 문제를 해결해 본 사람은 쉽게 무엇인가를 결정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무지성적인 낭비 혹은 절약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매일 돌아서 의심과 불안을 씻는, 깨끗해지는 정성이 밴 사람이라면... 세상 모든 왜곡을 바로잡아 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편견 없는 사람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맑은 눈을 가지게 된다. 범상치 않은 인간이라고 외치는 눈빛을 가지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맑은 여자가 아마 그러할 것이다. 영혼이 찌들 틈을 주지 않았던 여자. 지금도 틈을 주지 않는 여자. 숙녀의 매일은 그리하여 더 바쁘다.
그리고 나도 기왕이면 품위 있고 깨끗한 남자가 좋다. 산전수전 다 겪은 꼿꼿하고 맑은 남자. 아니, 신사.
https://youtu.be/VeAQWMabyhk?si=U8Jhs9MoFsFgQuOf
https://www.youtube.com/watch?v=7pBDgfOIF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