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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Sep 19. 2023

나도 운이 좋은 숙녀가 되고 싶다

운명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라

피터 펜디 <복권 앞의 소녀> 캔버스에 유채, 63X50cm, 1829,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동그라미 안에 숫자가 여러 개, 의심의 여지 없이 ◌◌입니다. 1800년대에 오스트리아에서도 ◌◌는 존재했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름하여 행운◌◌! 삶에 치이고 고단하고 서러운 날, 한번쯤 운을 기대하며 사 보지 않은 사람이 적어도 제 주변에는 없었더랍니다. 

<복권 앞의 소녀>는 비더마이어 시대의 오스트리아 예술가 피터 펜디(Peter Fendi, 1796~1842)의 작품입니다. 유아기의 척추 장애로 평생 불편함을 겪으며 그림을 그렸던 화가에게 원망이 왜 없었겠습니까, 원망할 만큼 원망해보고 좌절할 만큼 좌절해보고 그림에 매진하고 또 매진하지 않았겠습니까. 행운과 불행사이의 간극을 그만큼 아는 화가도 드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하여 다시금, 하늘이 내린 불운을 받아들이고 자기 목숨값으로 그림을 연마하며 이윽고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화가, 그가 그린 복권과 소녀는 그저 행운에 대한 갈구나 공허한 의심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명리학(命理學)을 공부했다. 이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이쪽에 관심 가져본 사람은 다 안다. 순탄하게 살았던 사람은 사주팔자 따윈 안 믿는다고 떵떵댄다.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만이 갑갑해 자기 운명에 매달린다. 사주팔자 여덟 글자를 붙들고 여기도 가 보고 저기도 가 본다. 나중에는 갑갑해 직접 배우러 다니는 게 수강생들의 수순이다. 이런 데도 매달려보지 않은 사람이 조금은 부럽다. 운명에 절하지 않아도 운명이 만만하게 길을 비켜줄 배경이나 기틀이 있을 터이니. 


고작 일 년 정도였지만 운명을 공부하고 사색했던 시간은 운명의 근력을 기르는 시간이었달까, 이제 나는 운명에 짜증을 내기는 해도 운명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것은 옳은 자리로 돌아가게 될 터이니. 이것이 운이다. 돌 순(巡), 돌아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 한편 명(命)은 하늘이 내린 자질이다. 유전적 재능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운명은 나의 명을 소중히 여기고 운을 기다리는 것이다.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며 필요 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갈고닦는 것. 언제든 필요한 곳에 쓰임이 될 수 있도록 가꿈과 동시에, 이 재능이 필요하다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인내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돌고 도는 운이 나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라 다시금 다시금 다시금 믿는 것이다. 


그러나 운은 사계절이 돌아 다시금 같은 계절이 오듯이 기계적인 시간의 순환인가? 그렇다면 '운명의 여신'이 등장할 수 없다. 운명이 인격화되는 이유는 '운'이 '명'에 작용되는 원리가 그저 산술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운은 확실히 명을 가린다. 사람을 고르고 또 고른다. 그가 정직하게 어떤 명을 가꾸어왔는지를 지켜보다 그의 이름을 부른다. 


운은 앞뒤가 정확한 사람을 좋아한다. 뒤끝 없이 부끄러움 없이 명을 닦는 사람을 좋아한다. 더럽히거나 망가져도 바로 일어나 쓸고 닦고 고쳐가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무도 모르는 시간과 장소에서 하는 행동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 좋지 않은 일을 하면서 아주아주 잘 산다. 좋지 않은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팔면서 큰돈을 벌기도 하고, 간절한 이에게 거짓 정보로 제품을 과장하여 한탕 벌기도 하고, 매점이나 매석을 하면서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 속임수로 피라미드 사업을 해서 타인을 도구 삼기도 한다. 그러나 한때의 운이 움직여 떠나면 어떻게 될까? 누구라도 속일 수 있었던 어두운 그늘에 환한 빛이 들게 되면. 


살다 보면, 분명 좋지 않은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을 본다. 특히 여자로 살다 보면 정말로 세상 쉽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젊고 예쁘기까지 하면 말할 것도 없다. 돈 가치가 너무나 내려앉아 숨 막히게 쪼들리는 요즘이라면, 익명의 SNS 계정들이 매일 우후죽순 생겼다 사라지는 요즘이라면 '누가 알겠어?' 하는 유혹에 기꺼이 넘어가고 싶을 듯싶다. 이런 거 없었던 옛사람이라 나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젊을 때의 나라고 별 다를 거 없었을 테니. 하루 종일 뼈 빠지게 고생하며 돈을 벌어 봐야 받는 것은 만 오천 원 안팎의 일당이었던 젊은 날, 분명히 알고는 있었다. 여자의 젊음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 다행인 것 중 하나는 젊음으로 돈을 만드는 일에서 멀리멀리 멀어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유혹이나 고민 따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성숙한 여자의 기쁨이다. 


도덕적이지 않은 일로 돈을 버는 일이 쉽고 강력한 이유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자기 인격을 팔아 돈을 벌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격은 값지고 한 번 팔아넘기면 다시 돌이킬 수도 없다.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가 고민했듯이. 아무리 노력해도 깨끗했던 최초의 영혼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한때 비도덕적인 일로 큰돈을 번 사람이 깨끗하게 손을 씻고 잘 사는 이가 드물다. 다시금 그때 그 일로 돌아가기가 너무 쉽다. 쉽게 버는 돈 때문이 아니다. 더 이상 팔 인격이 남지 않을 만큼 팔았기 때문에, 이후로는 파산 또 파산. 비윤리적인 일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 


운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고결한 인격이다. 인격은 연출이 안 되므로 운 정도가 아니라 사람도 속일 수가 없다, 무엇보다 깊은 곳의 나 자신을 속일 수 없다. 어서 더러워지라고, 조금쯤 그래도 된다고 사방에서 외치고 발목을 걸고 옷깃을 잡는 이 세상에서 고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 순간순간 결심하고 버티는 사람만이다. 끝끝내 지지 않는 몇 사람만이 남는다. 그런 사람이 운을 기다리고 명을 꽃피운다. 운명의 여신이 가까이 다가와 귀를 잡아당기고 크게 말해준다. 기회가 왔다고 뒤통수를 때리고 토닥토닥한다. 지금이 너의 시간이니 놓치지 말라고 적극 돕는다.  


식당을 메이크오버하고 인생역전을 만드는 예능 <골목식당>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라. 한 회 두 회의 솔루션과 인생역전이 아니라 몇 년이 지난 후에도 변치 않는 맛으로 칭찬을 받고 일가를 이룬 이유는. 이것이 운의 덕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해 온 그대로 겸손으로 항시 자기를 살펴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기회를 준 운을 실망시킬까 봐 조심조심 한 발 두 발을 딛기 때문이다. 결국은 자기 영역에서 우뚝 서고 부자가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은 시간이 증명한다. 아, 그리고 그 때는 시간의 켜켜이 인격마저도 보증된다. 


지금의 순조로움이 돌고 도는 타이밍의 운에서 온 것인지 나의 목숨과 힘에서 닿는 명에서 온 것인지는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다. 


우습지만 나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로또를 산다. 주중에 놓치면 토요일 오전에 부랴부랴 달려가 살 정도로 루틴이다. 이 복권이 꼭 되어야만 한다는 의지는 나에게 없다. 매주 물 흐르듯 찍고 가는 나의 리추얼일 뿐. 반은 장난처럼... 이런 나의 제례를 어여삐 보아 달라는 성실한 애절함이다. 나의 운명은 아직 검은 물 같기도 하고 맑은 물 같으므로, 언제 맑은 물이 올지 뒷통수를 팍 쳐서 알게 해 달라는 호소다. 나는 운명의 생리를 알고 운명의 인품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고결함을 사랑하고 지키려 분투노력하는 숙녀에게 운명은 꼭 자애롭다. 결국은 그렇게 끝맺는다. 내가 배우고 익힌 운(運)과 명(命)의 세계에서 이것만큼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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