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시대에 활동했던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은 그림 관청에서 녹을 받는 화원화가였습니다. 동물을 그린 영모화가 발달했던 조선 시대에 고양이라는 특정 주제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약간 말이 어눌하여 타인 앞에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였고 대신 틀어박혀 그림 그리는 데 열중했습니다. 원래는 주류를 이루었던 산수화에 매진히였으나 자신이 산천을 그리는 데 재능이 없는 것을 깨닫고, 가까이 있던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대상에 대한 애정만큼 관찰력은 높아집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유연한 포즈, 묘한 색이 조화로운 얼룩 무늬, 사실적인 털결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앙큼한 표정의 포착은 덤입니다. 햇빛에 반응하는 기묘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털의 표현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하늘하늘한 꽃잎과 줄기, 잎새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변상벽은 그렇게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렸을 뿐 아니라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하여 ‘변고양(卞古羊,卞怪羊)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였답니다.
물론 변상벽이 고양이만 잘 그린 것은 아닙니다. 특유의 털 표현을 살려 보송보송한 병아리와 꼬리털 무늬가 독특한 닭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변닭'변계(卞鷄)'이라는 별명도 있었습니다.) 1763년과 1773년 영조의 어진을 그리는 데 두 번이나 불려갈 정도로 인물화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얼마나 왕을 기품 있고 훌륭하게 그렸는지 두 번 각각 구산의 첨절제사와 곡성 현감직을 받을 정도로 영조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장지연이 편찬한 『진휘속고(震彙續攷)』에서는 “화재는 고양이를 잘 그려서 별명이 변고양이였다. 초상화 솜씨가 대단해서 당대의 국수(國手)라고 일컬었다. 그가 그린 초상화는 백(百)을 넘게 헤아린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