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 관련 직무와 PM
1.
최근 조직 상황으로 인해서 직무 변경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지인들을 보면서, 마케터에서 PM으로 직무를 변경하던 것이 생각났다. 전체 직장 생활 연차는 그리 높지 않은데, 마케터와 PM이라는 서로 다른 직무를 경험했고, 이 생각이 확대되어서 신입, 주니어가 하기 어려운 직무까지도 생각이 뻗쳤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낮은 연차에서 하기 어려운 직무를 좀 끄적여 본다.
2.
브랜드 마케터, 브랜드 디자이너 등 '브랜드'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직무는 신입 혹은 주니어들이 잘하기 어려운 직무다. 브랜딩은 철학을 다루는 일이다. 단순히 카피라이팅을 고민하고, 좋은 디자인을 고민하는 직무가 아니다. 브랜드 관련 직무는 철학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단어 하나, 디자인 하나에도 그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추구하는 철학이 녹아들어 가야 한다. 단어 하나, 디자인 하나에도 브랜드와 비즈니스가 추구하는 철학을 녹여내려면 브랜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3.
특정 브랜드의 철학을 다루는 일은 어느 정도 필드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조금씩 쌓을 수 있다. 단기간에 쌓을 수 없는 일이고, 쉽사리 쌓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 매거진과 아티클에서 브랜딩에 관한 글을 읽고, 성공적인 브랜드의 케이스 스터디를 한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철학은 그렇게 쉽게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마케팅과 전혀 다른 일이다. 브랜딩은 철학을 다루는 일이고, 마케팅은 성과를 다루는 일이다. 브랜딩 일을 직접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케팅을 하면서 옆동네쯤 되는 브랜딩 관련 업무를 곁눈질로 보다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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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PM 직무 역시 신입 혹은 주니어가 하기 쉽지 않은 직무다. Product Manager 뿐 아니라 Project Manager, Product Owner 모두 신입 혹은 주니어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직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첫째로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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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방향성에 맞춰서 프로덕트를 개선하고 만들 수 있도록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야 하고, 유저에게 좋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UX에 대한 이해도도 필요하고,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않은 디자인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도 있어야 하고, 기술적 제약이나 조건들을 바탕으로 프로덕트를 구현하기 위해서 개발 지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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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신입 혹은 주니어의 경우 개발 직군으로 커리어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다른 분야의 지식들 보다도 개발 지식을 익히는데 훨씬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개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개발자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무슨 이야기를 듣는 것인지 모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이해한 게 맞는지 되묻는 것뿐이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그에 대한 답을 듣다 보면, 조금씩 조금씩 귀가 트이며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만큼 점차 더 넓고 깊은 범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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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식의 경우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 듣고 하다 보면 그나마 좀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물론 전문적으로 매일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신입, 주니어가 PM 직무를 하기 어려운 또 다른, 더 중요한 이유는 거의 대부분의 조직에서 PM은 축구 경기의 주장과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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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경기 중 주장은, 필드 위에서 각 팀원들이 사전에 감독으로부터 지시받은 전술을 구현하도록 도와주고, 각 팀원들 간의 소통을 돕고, 또 팀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PM도 거의 비슷하다. 사전에 리더십 레벨로부터 받은 업무를 해내기 위해서 각 파트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하도록 도와주고, 팀원들 간의 소통을 돕고, 팀을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먼저 달려 나가는 직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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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폴 프로세스에서는 직급이 높은 사람이 주장을 맡는 경우가 많지만, 목적 조직에 기반한 애자일 프로세스일 경우 PM이 주장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입이나 주니어가 PM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 주장이 아니지만 주장 역할을 도맡아서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팀원들의 연차가 비슷하고, 핏이 잘 맞는다면 괜찮지만, 몇몇 팀원이 연차가 높거나 핏이 맞지 않는다면 힘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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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차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경험이나 순간적인 대응 등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업무에서나 팀원 관계에서나 실수도 많이 하기 때문에 힘든 순간이 자연히 많아진다. 또 성격이 괜찮고 핏이 잘 맞아도, 연차가 높거나 직급이 높은 팀원에게 업무 관련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니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PM을 하면 힘들 수밖에 없다. 사실 연차가 낮은 상태에서 안 힘든 직무가 어디 있겠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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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본인 의지로 PM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PM 직무는 오래 할 수 있는 직무는 아니다. 본인 의지로 선택했어도 매일, 매 순간 힘든 게 낮은 연차의 PM인데. 그렇지만 본인 의지로 PM을 했다면, 다른 직군이라면 접하기 힘든 값진 경험들과 지식을 쌓을 수 있다. 온라인 교육 업체들의 '부트캠프 듣고 신입 PM으로 취업했어요', '유망 직무 PM' 이런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런 키워드가 취준생들에게 잘 팔리니 저런 키워드를 내세우는 것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