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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Nov 13. 2016

소중한 것은 조금 더 멀리 두고 보면 어떨까.

가깝게 지낸다고 모든 생활을 오픈하고 지내는 것, 불편해!

사람들은 각자 친밀감의 정도를 표현하는 데 있어 다양한 방법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 종류나 정도는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과거를 돌아보자면, 꽤 친하게 어울리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항상 유지하는 사람들을 이따금씩 만나곤 했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고,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선택도 강요하지 않았고, 항상 나의 선택을 존중해주었으며 곁에서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는 축하해주었고, 어려울 때는 위로하고 기운이 나는 말들을 해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관계는 끈끈한 듯 그렇지 않은 듯 그러나 마음 한 편 어떤 위로가 되는 그런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참 신기한 것은 아주 살갑게 속을 모두 터놓고 지냈던 사람들보다 오히려 적당히 거리를 두었던 그들과의 관계가 더 오래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쉽게 상처를 주고 있는가'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친근함의 표현은 각자 다르기에, 각자의 애정 표현도 다르기에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상대방의 감정 또한 다르기에 이 주제는 꽤 흥미가 있다. 상대방이 내 감정보다 더 우위에 있어 나를 너무 적극적으로 챙긴다거나 지나친 호의를 베푼다거나 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나는 불편하게 여긴다(물론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도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만일 그 불편함이 내가 원하지 않는 선까지 침범하게 되거나 간섭이라고 여겨지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호의는 고마움을 넘어 부담이 되고 거부감이 되며 그것은 곧 눈덩이처럼 커져버리고 만다


사람은 각자의 가치관과 생활습관이 있다. 자기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려 하고, 생각하던 대로 사고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 그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아주 쉽게 오픈하고 수용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거나 그것을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조금만 가까워지면 동의도 없이 무참하게 상대방의 생활에 침범하는 사람들이 있다(이러한 현상은 성별의 구분이 없다). 그럴 때 나는 관계의 피로감을 느끼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과연 누구에게 좋은 걸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 한다. 가까우니까, 더 귀 기울이니까, 더 의지하고 있으니까... 굳이 이유를 찾자면 무궁무진하겠지만! 왜 가까우면 일일이 다 간섭하려고 하지? 왜 각자 살던 패턴을 한순간에 깨어버리려고 하는 걸까? 왜 강력하게 "NO!"라고 말해줘야만 싫어하는걸 눈치채는 거지? 언제부터 그래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있었나?


스스로를 '꽤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과거를 반성한다. 나는 예의, 존중, 배려 그런 것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상황은 아주 순간이면 되었다. 친하게 가깝게 지내는 것 좋다. 그렇지만 상대방을 자신의 가치관에 맞춰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나와 당신은 너무나 수많은 인간들 중의 하나, 또 하나일 뿐이며,  우리는 아주 다른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닮은 듯 하지만 당신과 나는 다른 인격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이 극에 치닫게 되면, 마치 내가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아왔는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앞으로 이 관계를 어찌해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아주 이성적이고 칼 같은 인간은 되지 못해 거절도 잘 하지 못하고 굳이 나쁜 말을 상대에게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상대가 조금만 아주 조금만 그런 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다가 조용히 그 관계를 놓아버린다. 그냥 굴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가장 큰 착각은 '내가 어떤 사람을 좀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 사람을 '당신이 느끼는 어떤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쯤이라고 해두겠다. 소중한 것일수록, 가까운 것일수록 조금 더 멀리 두고 보라.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 우리는 각각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네가 나고, 내가 너다!'같은 악다구니가, 그런 강요가 또 어디 있을까?


나도 당신에게 보이고 싶은 어느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구석도 많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만 말고 내가 보여주는 부분을 순수하게 지켜봐 주고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구석도 조금씩 보여주게 되도록 관계의 건강함을 유지하며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은 어떨까! 사람마다 감정의 골의 다르고, 서운함의 지점이 다르다. 결국 관계라는 것은 상대와 맞추어 가는 것이다. 모든 관계를 '거기서 거기'라고 쉽게 단정하는 것에서부터 관계의 잘못은 시작된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선(혹은 벽이라고 해둔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다. 그 선을 지키며 지내면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지나치게 의지하거나 부담을 주는 관계로 지내지 않을 수 있다. 서로의 지혜를 나누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 지낼 수 있다. 관계라는 것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도 서운하고 당신도 서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서운함은 조금 달리 보면 기다려주면 돌아오는 줄다리기 같은 것이다. 오래 지내고 싶다면, 그 관계를 조금 더 가져가고 싶다면 조금 멀리 두고 보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는 없다. 말을 줄이고, '하고 싶은 말' 말고 '해야 할 말'을 하라. 그리고 제발 당신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자.


오늘 밤 '그리움의 간격이 필요한 것이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간격을 유지하며 건강한 관계로 지내보자, 소중한 나의 친구들! (그리고 이렇게 불편하니 어쩌니 저쩌니 떠드는 필자도 알고 보면 꽤 다정한 인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사실을 핑계 삼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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