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은 부류가 아니다. 관심 분야라든지 호감이 있는 대상에 관한 것이라면 좀 다르겠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의 심리나 사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이므로 타인에 대해 아주 무관심 한 편도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모르는 대상에 대한 과한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인들 중에는 자기 얘기보다 남 얘기를 더 즐겨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참 무료하고 따분하게 느껴진다. 전혀 모르는 대상이거나,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의 이야기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때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여겨질 정도에 다다를 때가 있는데 전혀 모르는 대상과 그의 이성친구나 가족, 집안에 대한 너무 자세한 정보를 들을 때이다. 바로 'TMI'라고들 부르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
내가 이걸 왜 알아야 하지?
얼마 전 지인이 친하게 지내는 동생의 새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이는 삼십 대 중반인데 원래 무슨 일을 하다가 수험생활 끝에 공무원 시험을 막 합격했으며, 부모님 직업은 뭐며 형제들은 어디에 다니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마구 흘러나왔다. 사실 그 동생은 몇 달 전만 해도 직업 좋고 집안도 좋다는(들은 워딩)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고 결혼까지 생각 중이었다고 들었는데 그사이 그녀의 연애사에 많은 변화가 있던 것이다.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지? 차라리 그녀의 이상형, 연애스타일 같은 이야기였다면 이렇게까지 부담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직업, 집안 이야기는 황당함 그 자체였다. 내가 이걸 왜 알아야 하지?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사실 나는 그녀에 대해 지인의 아는 동생이라고 여길 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므로, 또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그녀의 집안이나 애정사는 관심도 없고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동안에 내게 닿은 정보들과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갑자기 나를 쿡 찔러댔다.
"그런 건 알려주지 않아도 돼. 그리고 그 친구가 그 사람과 얼마나 만날지도 모르고, 얼굴도 한번 본 적 없고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안이나 형제, 회사 이름 같은 디테일한 정보. 왜 이런 거까지 다 알려주는 거야?"
"둘이 집안도 비슷한 게 잘 맞고 그런 거 같아서 잘 됐으면 해서 얘기하는 거지!"
"그래도 사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이런 배경까지.. 이런 거 너무 자세히 이야기하지 말아 줄래?"
매번 만날 때마다 지인이 계속 남의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히 한다면 앞으로는 만나는 횟수를 줄여야겠다 싶었다. 그 시간이 아깝기도 했지만 그 날은 상대방에게 내가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까지 섞어가며 최대 지인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름에는 그동안 아주 많이 담아두었던 진심이 담긴 요청이기도 했다.
내 이야기도 그렇게 자세히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사회에서 만나는 남의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는 본인의 느낌이나 판단이 섞여 정확한 정보가 아님에도 너무나 쉽게 남의 이야기를 실시간 중계하고 다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다. 또 그런 사람들은 내 앞에서 그렇게 얘기하듯 내 얘기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자세히 하고 다닐지 모를 일. 입장 바꿔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모두 알고 있다면 어떨까?
사실 나는 험담만 일삼는 모임을 싫어한다. 재미도 없을뿐더러 그런 시간들을 스스로를 위해 쓰는 게 훨씬 의미도 있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임이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면 그 모임에는 나가지 않는다.
관계라는 것은 함께 나누는 대화의 내용과 질이 크게 좌우한다고 믿는다. 늘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과는 약속을 잡게 되면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먼저 드는 때가 있는 것처럼. 친한 사람들끼리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그렇게 차갑게 구냐고? 그건 그 사람이 계속 그러고 다니도록 오히려 부추기는 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계속 볼 사이라면, 조금 더 함께 하고 싶다면 먼저 말해주는 게 '예의'이자 관계에 대한 '의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