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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ug 28. 2024

사랑했던 기억은 때론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

사랑했던 순간, 행복했던 과거는 힘이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오늘도 그가 그립고 보고 싶다. 그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그가 떠났을 때, 나는 다시 세상 한가운데에 홀로 던져진 느낌이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때의 현실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있지 않았다. 남겨진 자는 홀로 붙어있는 숨을 내쉬며 계속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아야만 했다. 살면서 이미 여러 번 방황을 해봤으니 이번에는 과거보다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기만을 바랐다. 나는 갈피를 잡아야만 했다. 머리로는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워하다 슬퍼하다 부정하다 분노하다 절망하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며 시간을 마냥 흘려보냈다. 늦은 밤이면 함께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고는 새벽 동이 틀 때가 돼서야 잠을 청하는 일이 잦았다. 도무지 믿기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주어진 일상을 마냥 반복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라며 살아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그가 먼저 떠올랐다. 그가 떠난 이후 나는 아침이 싫어졌다. 그리고 제발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함께한 시간의 길이만큼 그는 나의 삶과 일상 곳곳에 빈틈없이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추억하며 그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에 자신을 또박또박 또렷하게 새겨두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의 끝, 마지막은 너무나 아팠다.


나는 그의 마지막 모습과 그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그리고 우리가 이별을 하는 과정까지 모든 마지막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 시간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언제든 꺼내볼 수 있게 지금도 그것들을 지니고 다닌다. 사람들은 내게 '그러고 있으면 잊을 수가 없다'며 잊어야 살 수 있다'고들 말했다. 계속 상처로 남아 있을 테니 조금 멀리하고 잊으려고 노력해 보라는 조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보고 싶을 땐 그리워하고, 울고 싶을 땐 울었다. '제발 꿈이었으면...'을 수백 번 되뇌며 방황을 거듭하고 나서야 조금씩 천천히 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진리'였다.


"돌아와. 얼른... 보고 싶어."

"자기야.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수없이 혼잣말을 하고 곁에 있는 것처럼 계속 질문을 해보아도 그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떤 한 존재가 세상에서 먼지처럼 사라져 다시는 눈을 마주칠 수도 만날 수도 안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처절하게 깨달아야 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언제든 이별할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어느 만큼 의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처음 마주하며 어둠의 늪에 빠져 혹독한 열병을 앓으며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사랑했던 기억은 때론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

드라마를 보다 눈을 마주치는 연인들을 볼 때, 나는 그의 얼굴, 그의 눈빛, 그의 미소가 떠올라 사무치게 슬프기만 했다. 로맨틱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울고 있지 않음에도 가슴이 혼자 서러움과 그리움으로 요동을 치고 눈물은 이미 범벅이 되어있다. 나는 울지 않았는데 여러 번 계속 울고 있었다. 세상 모든 서러움이 북받쳐 내렸다. 아까운 사람.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을까.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끊임없이 절망하고 좌절하게 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꼭 한 번은 다시 만나게 해주는 기회 같은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종교와 이념을 떠나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원초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고 어디에 머무르게 되는지 전에는 깊게 파고들어 보지 않았던 수많은 의문을 가지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사랑했던 기억은 비수가 되어 나를 처참하게 찌른다. 나는 또다시 상처받는다. 사랑했던 기억은 더욱 커다란 무엇이 되어 나를 흔들어댄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것들은 때때로 나를 찾아와 아프게 하고 괴롭혔다.


어쩌면 나는 내게 주어진 현실을 모두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더 이상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나는 내 방식으로 그 문구를 소유하고 싶어졌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그는 현실 어디에도 자리하지 못하지만 나의 삶에 언제나 있었다. 그가 떠난 4년의 공백은 처음에는 슬픔으로 가득했으나 이제는 그가 어디에든 있지 않아도 여전히 내 마음 안에서 나와 함께하며 언제나 그랬듯 나를 응원해주고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는 언제나 내편이었고, 무엇이든 지지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언제나 든든하게 함께해 줄 영원한 지원자가 있는 셈이다.



사랑했던 기억은 때론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장면이 뇌리에 박혀있다. 제목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옛날 영화인데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장면이다. 영화 제목을 알고 싶었지만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가 무척이나 보고 싶고 그리운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자 아빠가 이렇게 말한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된다고. 그 기억으로 평생을 살 수 있다고...


좋았던 기억만으로 남은 생을 살 수 있다니,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엄마가 보고 싶은 건데, 함께 있는 걸 원하는 건데 볼 수도 없고 함께할 수 도 없는데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과거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를 떠올리고 아파하는 그 수많은 시간들을 겪어오며 나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였는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고 사랑받았는지 그리고 마음속 깊이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행복해하며 그것들을 누려왔는지를 깨달았다. 사랑했던 기억은 쉽사리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힘이 있고 그 힘은 꽤 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 나의 남은 생에 별다른 행복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사랑했던 기억들 그 순간을 추억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남은 생을 따뜻함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랑했던 기억은 때론 상처가 되어 나를 아프게도 하지만 오히려 나를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고 세상 시름에 지친 나를 또다시 큰 숨을 내쉬며 살아가게 만들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 되었다.


사랑했던 순간, 행복했던 과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 힘으로 내게 주어진 오늘을 살아간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었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 이윤학 시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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