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아들의 열한 살의 기록
용돈을 받아 쓰게 되었지만, 녀석들은 돈의 가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마치 이천오백 원이면 편의점에서 과자도 사 먹고, 친구들한테 떡볶이도 사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한 일주일 정도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 이천오백 원으로 뭐하지.”
“나는 뽑기 할 거야”
“나는 하고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그래서 고민이야!!”
나름대로 경제 개념을 가르쳐본답시고, 마트 심부름도 시켜봤고, 문방구에서 물건을 구매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신용카드를 통해 이루어졌던 거라 녀석들에게는 그냥 도깨비방망이 같았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지폐를 손에 쥐고 돈 쓸 궁리를 하다 보니, 같이 편의점을 가거나 마트를 가도 가격표를 보느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동안 먹고 싶은 것을 고민 없이 덥석 집어 올리던 녀석들의 손이 한참을 머뭇거렸다.
“아니, 과자 한 봉지가 왜 1,800원이나 하는 거야?”
“젤리가 이천 원이 넘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마트를 샅샅이 뒤졌지만 비싸지 않은 것이 없던 모양이었다.
녀석들의 가격 탐방은 편의점, 집 앞 마트를 거쳐 문방구로 확장되더니 그토록 좋아하는 레고와 건담몰에서는 눈이 휘둥그레지다 못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비싸. 내가 한 달 용돈이 만 원이니까 여섯 달을 모아야 살 수 있는 거네….”
용돈을 받으면 갖고 싶은 걸 마음대로 또 원 없이 살 줄 알았던 녀석들은 며칠 만에 실망하고 말았다.
용돈은 돈 자루가 아니었고, 이천오백 원은 일확천금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녀석들에게 용돈을 주기 시작하면서 집에서 주는 간식을 제외한 군것질은 스스로 용돈에서 해결하기를 못 박았다. 덕분에 주머니에서 사정없이 나가던 눈먼 돈이 줄어서 좋았고, 식사 전에 배부르게 사 먹던 간식이 줄면서 밥시간이 잘 지켜져서 좋았다. 이렇게 엄마 입장에는 아쉬운 것 없이 좋은 점만 넘치는데, 실망한 녀석들이 '엄마 용돈 이제 안 할래요' 할까 봐 오히려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엄마. 우리 아르바이트하면 안 돼요?”
“무슨 아르바이트?”
“용돈으로는 살 수 있는 게 없어요. 근데 모으려면 너무 오래 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밖에 없어요.”
용돈을 받기 전에는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녀석들은 ‘엄마 이거 사주시면 안 돼요’하고 쉽게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 사달라는 말보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부족한 돈으로 갖고 싶은 걸 갖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다 생각하니 이마저도 기특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유가 말했다.
“어디서 아르바이트하게?”
“뭐. 식당이나 편의점 같은 데서 하면 될 거 같은데?”
"우와. 나도 같이 하자!"
엄마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너희에게 일을 시켜주는 곳은 없어, 그러니까 지금 너희가 할 수 있는 걸 열심히 하는 거야.
엄마가 집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고민해 볼게.”
결국 다시 집안일 아르바이트를 부활시킬 수밖에 없었다.
현관 신발 정리 50원, 읽은 책 정리하기 50원, 빨래 개기 50원….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비용은 50원에서 100원을 넘지 않았고, 녀석들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눈에 불을 켜고 할 일을 찾았다.
'아…. 아들은 역시 목표를 설정해 줘야 하는구나.'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 사납게 눈을 치켜뜨고 ‘제자리에 놔’ ‘정리해’라는 말에 힘을 싣지 않아도 된다는 게 놀라웠다.
녀석들은 부동산에서 집 보러 나온 사람들처럼 설렁설렁 집안을 돌아보았다.
흐트러진 곳을 가리키며 ‘이거 정리하면 얼마예요?’ ‘이건 얼마예요?’하고 값을 매겼고, 대꾸해 주다 보니 아르바이트 리스트는 늘어났다.
리스트가 늘어나고, 녀석들이 분주해질수록 몇 걸음 못가 발끝에 차이던 책과 장난감은 제자리로 찾아갔고, 내가 품을 들이지 않고도 정돈돼 가는 모습을 보니 기분까지도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치워도 티도 안 나던 것은 흐트러질 틈도 없이 단 번에 정리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녀석들과는 다른 의미로 '돈이 참 좋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우아한 아들 엄마 되기'가 한 발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옅은 웃음꽃이 피어나는데, 녀석들은 우아한 엄마 대신 살쾡이 같은 엄마를 소환했다.
녀석들이 사부작사부작하는 정돈도 노동이라 치고, 그것을 통해 '돈 모으는 즐거움을 깨닫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해지려는 찰나, ‘내가 할 거야’ ‘내가 먼저 했어.’하는 다툼도 찾아왔다.
"아니 내가 먼저 하고 있는데…."
"내가 먼저 하고 있었어. 내가 더 많이 치웠다고!"
녀석들은 누가 먼저 치우면, 마치 내가 먼저 할 건데 뺏겼다고 생각했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엄마가 생각한 그림에는 없던 거였다.
엄마의 눈은 10시 10분을 향하고 목에는 핏대가 서기 시작했고, 결국 엄마가 폭발했다.
"그럴 거면 둘 다 하지 마!"
두 녀석 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씩씩대기까지 했다.
결국 아르바이트는 사흘 만에 파국으로 끝이 났다.
푼돈에 연연하다 보면 큰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아직 너희는 오십 원, 백 원이 너무나 소중했다.
너희가 억울한 만큼, '우아한 엄마 되기 별거 아니네'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오만함도 바사삭 깨졌다.
아르바이트가 없어져서 다시 어떻게 돈을 모아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는 열한 살의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