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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ff the record Aug 12. 2024

7. 영혼이 빠져나가 버린 어린 현수 1





#1    

 

같은 반이라고 모두 친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설희는 자훈이와 유치원 때 한 반이었던 친구였다. 

방자훈과 민현수는 부*친구고.     


하지만 현수가 귀신을 보기 전까지 친구라고는 방자훈뿐이었을 정도로 조용한 아니었으니 설희와 현수는 친해질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민현수, 방자훈, 하설희. 

이 셋이 한번이 되고, 현수가 이때 귀신을 보게 되는 이변이 없었다면 말이다.     

 

자훈이 때문에라도 같은 반이 된 설희와 현수가 친구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타고난 성향도 현수와 설희는 잘 맞았다. 


자훈이가 몸을 쓰는 타입이라면, 현수와 설희는 머리를 쓰는 타입이었다.      

현수는 만월 도서관을 다니면서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설희는 어릴 적부터 책 좋아해 둘은 금방 친구가 됐다.    

 

안 그래도 남자아이들보다 빠른 머리 회전이 여자아이가 첫사랑에 빠지면 더 비상해지니... 

민현수와 방자훈은 거의 하설희의 손바닥 위에 있는 셈이었다.     

 

여기에는 하씨 아저씨의 공도 컸다. 

머리만 길었을 뿐 남자애나 다름없던 하설희가 현수를 만날 때면 어울리지도 않는 스커트를 그렇게 입고 나갔다.     


이건 하씨 아저씨 때문이다. 

하씨 아저씨는 무당일을 하는 아내 대신 설희를 저의 전담하다시피 키웠다.      


딸바보로서 선머슴아, 같은 딸에게 스커트를 입히고 싶었던 아저씨는 어린 설희에게 스커트를 한번 입혀 홍여사네 놀러간 적이 있었다. 

설희는 스커트를 진짜 싫어했는데 그날은 돈가스를 사준다는 말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씨 아저씨: 여사님요. 

(눈으로 싸인을 주며) 우리 희야(설희) 스카트 입은 거 좀 함 봐주소.     


홍여사: (눈으로 응수하며) 우리 희야~ 왔나~

아이고~ 참말로! 우리 희야가 오늘 윽수로 이쁘네.

안 그랐나, 현수야~     


현수: (분위기를 맞추며) 어...! 네. 할머니!

설희야, 스커트 이쁘다!     


설희: 진짜?     


하씨 아저씨: 가스나가 속고만 살았나.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이쁘다 안하나?               




설희는 빨간 토마토빛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숙여 스커트를 보며 만지작거렸다.

그날 이후부터 하씨 아저씨는 설희의 첫사랑을 위해 스커트를 부지런히 사다 날랐다. 

설희가 현수를 좋아하는 걸 진작에 알았던 하씨 아저씨는 딸의 첫사랑을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2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늘 자훈이네나 현수네에서 모이던 셋은 그날따라 마침 설희가 난생처음으로 헤드폰과 노트북을 샀다고 해서 구경할 겸 설희네에서 모이기로 했다.      


새 노트북과 새 헤드폰이라니 기계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학원이 끝나고 저녁 무렵 설희네 집으로 향하면서 현수와 자훈이는 계속 질문을 해댔다.               


현수: 설희야, 

노트북이랑 헤드폰 바로 쓸 수 있어?     


설희: 응. 

아빠가 어제 다 설치해 줬어.     


자훈: 이야. 좋겠다. 

난 아직 거실에서 밖에 컴퓨터 못하는데... 노트북이라니!

어디 거야? 비싸지? 

노트북은 게임도 할 수 있어?     


설희: 방자훈, 그거야 니가 맨날 게임만 하니깐! 그렇지.

그냥 아빠가 알아서 해줘서 난 잘 몰라.

영어 듣기 평가 공부할 때 방에서 쓰라고 엄마 아빠가 일부러 사주신 거야.     


현수: 왜?     


설희: (창피한 듯) 우리 집이 좀 작자나. 

그래서 문 닫고 있어도 내방에서 안방에서 점보는 소리가 다 들려.

목소리 큰 손님 오거나 손님이 울고 그러면 더 잘 들리고.

다른 공부할 때는 귀마개 같은 거 끼고 그냥 하는데,

영어 듣기평가는 점보는 소리 들리면 더 못 알아듣겠더라고. 

그렇다고 소리를 크게 해놓고 할 수도 없고...     


현수, 자훈: 아...                    





#3     


지금도 그렇지만... 설희네는 그리 잘 사는 집이 아니었다.

대부분 여러 칸의 한옥이 하나의 집을 이루는 판산동에서 설희네는 드물게 근대 양옥식 집이었다. 그만큼 작았다.     


그래서 다른 판산동의 무당집처럼 점을 보는 바깥채와 가족이 지내는 안채가 따로 없었다. 

양옥집이라 마당은 있었지만, 오래된 아파트처럼 거실을 빼곤 방들이 다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래서 안방에 손님이라도 들면 그 소리가 온 방에서 다 들렸다.     


설희네 어머니인 박 무당은 신기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박 무당의 부모님도 하씨 아저씨의 부모님도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서 이래저래 빚이 많았다.

두 분은 병원에서 간병하다 만난 사이였다. 하씨 아저씨와 박 무당은 병원에서 오래도록 오가며 눈인사하다 사랑에 빠졌다.     


하씨 아저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물려준 동네 슈퍼와 작게나마 월세 받는 집이 아니었다면? 설희네는 단칸방 살이를 해야 했을 거다. 


설희가 다 크고 빚은 갚았지만... 

땅값이 오를 대로 오른 판산동에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란 무리였다.     


하나뿐인 딸인 설희는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책을 많이 읽어 글도 곧잘 써서 학교에서 상도 타오는 아이였다. 

판산동을 벗어날 수 없었던 설희네 부모님(하씨 아저씨, 박 무당)이 나름 묘안을 낸 게 공부할 때 쓸 용도로 노트북과 헤드폰을 사주는 것이었다.   




            

#4     


설희의 새 헤드폰과 노트북에 얽힌 조금 서글픈 이야기를 뒤로하고 현수, 설희, 자훈이 이 셋이 설희네에 도착했다. 

설희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안방 문에 대고 노크했다.    

          

설희: 아빠, 다녀왔습니다. 친구들도 같이 왔어요.     


하씨 아저씨: 그래~ 우리 공주 왔나~ 

인타폰하지~

자훈이랑 현수도 왔나?     


현수: 네, 안녕하세요.     


자훈이: 안녕하세요~ 아저씨!     


하씨 아저씨: 오이야.     


설희: 아빠, 노트북은? 엄마는?     


하씨 아저씨: 우리 설희 공주 책상 위에 있지요~ 헤드폰도 같이 있어용~

아! 엄마는 지금 안방에서 기도 중이다.

벌써 6시가 다 됐뿟네!

니들 배는 안 고프고나? 짜장면 시켜주까?     


설희: 응, 먹을래. 

아빠, 용용각 시켜줘.

나는 난자완스!     


하씨 아저씨: 그래그래. 우리 공주님.

난자완스 시켜놓을게요!

가서 노트북 하고 있어라. 오면 부르끄마.     


현수, 자훈: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설희 방으로 향했다. 

설희의 책상 위에는 하얗고 각진 노트북과 함께 새하얀 헤드폰이 놓여 있었다.               




자훈: 이욜~ 하설희~ 

집에서는 (장난스레) 겅쥬님이셨쪄요?     


설희: 왜? (당연하다는 듯이) 넌 너네 집에서 왕자님 아니냐?     


자훈: (못 들은 척하며 컴퓨터와 헤드폰을 만지며) 음~

이거 해봐도 돼?     


설희: 당연하지! 이거 보러왔자나~

이거 하려고 도서관에서 영어 듣기평가 문제집도 빌려왔어.     


자훈: 오오오~ 


민현수 앉아봐~ 헤드폰 해보자.     


현수: 그래도 돼? 

나 헤드폰 처음 써봐...

그리고 난자완스 안 먹어봤어.     


설희: 야! 빨리 앉기나 해.

있다 먹어보면 되지. 맛있어.

문제집 23페이지 1번부터 10번. 이거 링크 파일로 튼다~   



            

현수가 자리에 앉자, 자훈이는 현수 귀에 헤드폰을 씌워줬다. 

설희는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깔린 영어 듣기평가 파일을 열어서 틀었다.

그런데 갑자기!        



       

“쿵”      


“꺄아악!!!”      




              

#5    

 

헤드폰을 쓰고 있던 현수가 툭하고 기절했다.      

귀신이 없는데도 말이다.


방자훈과 하설희가 있는데... 혼자가 아닌데... 현수가 기절하다니!      

아이들이 놀라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하씨 아저씨가 중국집에 주문 전화를 하다 말고 뛰어왔다.               




하씨 아저씨: 이게 뭔 소리고!     


설희: 아빠, (울면서) 현수가 기절했어. 어떻게 해.     


하씨 아저씨: 현수가 와(왜)? 

요즘 도서관 다니가가 기절 안 한다고 홍여사님이 좋아하셨는데...”     


자훈: 모르겠어요. 

(울먹이면서) 제가 헤드폰을 씌워주고 설희가 영어 듣기 평가를 틀었는데... 

갑자기 현수가 기절했어요.                




하씨 아저씨가 조심스레 현수를 자리에 눕히려고 할 때 설희네 엄마 박 무당이 달려왔다.      



         

박 무당: 이게 무슨 소리야?  

   

설희: 엄마, 

현수가 기절했어.     


박 무당: 뭐? 

현수는 혼자 있을 때나...     



          

그때였다. 설희 엄마가 모시는 장군님이 뭔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설희 엄마는 갑자기 빠르고 명확한 목소리로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여보, 현수 헤드폰 벗겨서 당장 마당에 있는 드럼통에 넣고 불붙여요.

헤드폰 공장에서 누가 죽었나... 

한이 서린 잡귀가 붙어와서 현수한테 말을 걸었나 봐! 현수 영이 너무 놀라서 빠져나가 버렸어! 

얼른 다시 자길 찾아오게 해야 해.

자훈아, 

당장 집에 가서 최 무당 언니! 너희 엄마 좀 불러와. 

설희야, 

넌 판덕이 할머니 모셔 와!”       



        

다들 대답할 새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설희 엄마인 박 무당은 현수 옆에서 숨을 쉬는 것도 아껴가며 기도했다. 


하씨 아저씨는 민현수의 몸이 차가워지지 않게 창고에서 전기장판과 겨울 담요 여러 장을 가져와 냉골이 된 현수의 몸을 데워줬다.     


이윽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홍여사와 자훈이 어머니인 최무당이 설희네로 아이들과 함께 모였다. 

다들 뭐라 할 세도 없이 현수의 할머니 홍여사, 자훈이 어머니 최무당, 설희 어머니 박 무당까지 이렇게 셋이 현수를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씨 아저씨는 우선 아이들을 진정시켜 거실에 앉혀놓았다. 

그리고 드럼통에 나무와 기름을 가득 붓고 헤드폰을 넣은 채 불을 붙였다. 불길이 하씨 아저씨 키만큼 타올랐다.     


불이 타오르자, 어딘가에 전화를 2번 걸었다.

20분~30분쯤 지났을까? 

인터폰 벨이 울렸다.      



         

“띵 똥.”         




           

#6     


설희: 아빠... 누구야?     


하씨 아저씨: 밥이다! 용용각 아재가 왔을끼다.

보통 일 아닌데 일 치룰라면 밥을 먹어야제!             



  

하씨 아저씨는 헐레벌떡 뛰어가서 무당 앞 현관문을 열었다.

용용각의 용씨 아재였다.             



  

용씨 아재: 설희 공주네 이게 무슨 일이고!

집 기운이 왜 이래?     


하씨 아저씨: 용씨 아재요. 

홍 여사님네 현수가 일이 좀 있어가가...     


용씨 아재: 니 전화 목소리가 팍 간거 듣고 내가 좀 챙겨왔으니깐.

알아 해라.             



  

용용각의 용씨 아재는 아예 중국집 배달통을 놓고 가셨다.

그 안에는 유니짜장면 2개, 짬뽕밥 2개, 볶음밥 2개, 대짜 난자완스, 대짜 물만두 그리고 게살수프 한 냄비와 모닝빵이 들어 있었다.     


막 상을 차리려고 할 때 누군가 ‘똑똑’ 노크하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자훈이 아버지, 방사장이었다.     

방사장은 제집인 양 게살수프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데우기 시작했다. 하씨 아저씨는 아이들을 불렀다.     

우선 방사장이 놀란 아이들에게 게살수프를 덜어주었다.

방사장은 아이들에게 집에 있는 사람이 건강해야 나쁜 기운이 들지 않는다며 꼭꼭 씹어서 잘 먹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게살수프를 먹는 동안 하씨 아저씨는, 모닝빵 반을 갈라 슬라이스 치즈와 깻잎을 깔고 난자완스의 고기완자를 넣어 작은 버거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먹였다.   

  

방사장 아저씨는 유니짜장을 가위로 잘게 잘라서 아이들이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게도 했다. 그리고 가만히 설희의 방에 가서 홍여사를 불렀다.     



          

“식사 들고 하세요.”  



             

세 무당은 돌아가며 차례로 방사장이 데운 게살수프, 볶음밥, 물만두, 난자완스를 들었다. 

속이 편한 메뉴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무당 셋이 다 먹고 나자 그제야 남자들이 남은 메뉴들을 먹었다. 

그래도 둘이 먹기에 많은 양이었지만 둘은 열심히 먹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스태미나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귀신에 들린 물건은 잘 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 시간 동안 불을 꺼트리지 않고 태워야 했다. 

방사장과 하씨 아저씨는 마당 한쪽에 쌓아둔 장작을 저소음 전기톱으로 갈라서 드럼통에 넣었다.     

아이들은 지쳐서 색색거리며 잠이 들어버렸다.


두 남자는 여전히 드럼통을 주시하며 장작을 중간중간 넣으며 헤드폰을 태우고 있었다.

방 안의 세 무당은 기도에 여념이 없었다.     


백색소음 마냥 이 3가지 소리만 설희네를 가득 채우길 몇 시간이 흘렀을까?

자정을 알리는 거실의 괘종시계 소리가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띵 똥”   

  

“이 시간에 누구야!”            



   

박 무당이 앙칼지게 화를 내면서 방에서 나왔다. 

엄마 목소리에 설희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두 남자는 당황한 듯 엉거주춤한 자세로 박 무당을 쳐다봤다. 

박 무당이 초인종과 연결된 인터폰으로 향했다.    



            

“으아악.”    



           

박 무당은 주저앉은 앉은뱅이 자세로 뒷걸음질을 쳤다. 

어깨가 살짝 떨리는 한기가 온 집을 에워쌌다. 

그리고 다시!     



          

“띵 똥”       



        

또 초인종이 울렸다.

그믐이 시작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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