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룩스 3국 중 하나인 룩셈부르크를 가려하니 왠지 아침부터 이 노래가 입가에 맴돈다. 크라잉넛이라는 밴드그룹이 부른 노래라는 건 알지만, 내용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고3 시절, 홍대 근처에서 공연을 많이 했었고 내 친구는 공연장에 들락거리면서 머리를 흔들며 어깨를 억지로 부딪히는 퍼포먼스를 하며 놀았다는데 난 근처 살면서 한 번도 안 가봤다.
오늘은 아침에 딸아이 학교에 면담을 하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네덜란드는 학교를 4살부터 보내는데 주변에서 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학교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해 미리 신청하려고 상담을 요청했다. 지금 우리 딸이 두 살도 안되었으니 너무 빠른 시기긴 하지만, 그래도 학교를 미리 봐 두는 건 좋으니깐, 아침 10시 반에 담당 선생님과 약속이 되어 있었다.
우리를 맞이 해준 담당 선생님은 키가 190 정도는 되어 보였다. 키 자체도 큰데 거기에 대략 10센티정도 높이의 검은 키높이 구두를 신고 있었다. 선생님이 학교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하시고 우리는 교외 활동이나 제2외국어 교육, 아시안 학생들의 비율 등 궁금한 사항들을 물어본 후 교실들을 한 바퀴 돌았다. 한국으로 치면 아주 작은 소학교 정도지만, 네덜란드 학교는 대부분 이 정도 크기다.겉에서 본 것보다 내부로 들어가니 교실들이 구석구석 많았다. 우리가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몇 개의 후보 중에서 가장 햇볕이 잘 들어오고 밝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우리 집사람은 시토 점수가 지역 내에서 상위권이라고 했다. 여기서 시토(CITO)란 중학교 진학을 위한 초등학교 6학년 때 보는 시험이다.
학교에 다녀 온후 집사람과 본격적으로 룩셈부르크에 갈 준비를 했다. 난 간식으로 계란을 삶고, 유부 초밥을 준비했다. 집사람은 아기 용품이나 우리 옷과 세면도구 등 을 챙겼으나, 짐을 캐리어에 집어넣으면 우리 딸이 그걸 꺼내고, 다시 넣으면 빼고를 계속 반복했다. 이것저것 만지고 궁금해할 나이고, 손에 쥐고 있는 걸 뺏으려고 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룩셈부르크 까지는 네덜란드 스히폴 공항 기준으로 왕복 약 650km, 이동거리만 4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집사람과 나는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이고, 대략 일 년에 한 번쯤은 방문하는 듯싶다. 첫 번째 방문은 개인적인 볼일 때문에 룩셈부르크 북쪽 끝에서 남쪽 끝에 있는 숙소까지 종단하였고, 두 번째는 스위스에 가며 잠깐 들렸었다. 오늘은 벨기에 브뤼셀을 거쳐 룩셈부르크 왼쪽 옆구리를 찌르며 아를롱을 거쳐 들어갈 예정이다. 4시간 반을 혼자 운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집사람이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 직전까지 운전을 하고 나머지는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벨기에는 도로 사정이 매우 안 좋고, 고속도로 진입로도 복잡하거니와 운전들을 너무 험하게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호판에 붙은 NL이라는 네덜란드 표시 때문인지 아니면 그네들의 잘못된 운전습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벨기에만 가면 차들이 위협적으로 우리 차 앞에 끼어들기를 했다. 우린 이태리 남부에서도 똑같은 경험을 했었다. 로마에서 차를 빌려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를 거쳐 아말피 해변까지 남부 투어를 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차들이 어찌나 가깝게 추월을 하는지 2인승이라 더 긴장했던 게 기억이 난다.
우린룩셈부르크에서 독일에 사는 처남과 만나기로 했다. 처남은 일을 마치고 프랑크 푸르트에서 기차를 타면 룩셈부르크 역에 12시 반에 도착한다고 했다. 지도로는 프랑크 푸르트와 룩셈부르크가 꽤 가까워 보였는데, 한번 갈아타야 하고 빙돌아 4시간 반이나 걸리다고 해서 좀 의아했다. 지금은 성수기라 룩셈부르크 주변은 숙소비가 너무 비쌌기에 남부 끝에 숙소를 구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1.5배 면적에 워낙 땅덩어리가 작아 남부 끝 프랑스 경계라 해도 룩셈부르크 시내까지는 20분밖에 안 걸리기에 숙소가 룩셈부르크 안에만 있어도 시내에 진입하기는 어렵지는 않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쯤 되었다. 마트가 문을 닫기 전에 물과 맥주를 사 와야 했기에 부랴부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주변 맛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우선 구글맵 기준 평점 4.0 이상에 리뷰도 많아야 신뢰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메뉴 사진들도 확인했다. 처음에 우린 포르투갈 음식을 먹기로 결정했는데 마트로 가는 길에 음식점을 보니 왠지 불량해 보이는 남자분들이 식당 밖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바로 맵을 재검색하여 이탈리안 식당 중에 대형 쇼핑몰에 위치한 곳으로 정했다. 봉골레 스파게티와 볼로네제 파스타, 마르게리타 피자를 시켰는데, 3가지 다 양도 많고 너무 맛있었다. 볼로네제는 이태리 음식점 어딜 가나 파는 음식이라도 대충 마트에서 파는듯한 소스만 부어서 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소스가 약간 질퍽거리면서 국물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이렇게 우리의 저녁식사는 대만족.
숙소에서 짐을 마저 풀고 딸을 먼저 씻기고, 재우려다가 나도 옆에서 잠들어 버렸다.
둘째 날
어제저녁 처남은 기차가 연착되어 새벽 1시쯤에 룩셈부르크 역에 도착했고, 마중은 장인어른과 집사람이 다녀왔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9층이고, 체크인할 때 리셉션 담당자가 방을 업그레이드하고, 뷰가 좋은 곳으로 방을 배정했다고 강조했었다. 커튼을 걷자 창밖으로 따뜻한 아침 햇살이 들어왔고,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감치 몽글몽글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니 공장들도 이제 막 일을 시작한 듯하다. 이 도시는 과거 1970년대 룩셈부르크를 먹여 살렸던 철강 산업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지금도 공장은 운영 중인 것 같았고, 어제저녁에 본 아저씨들이 아마 공장 노동자들이라고 예상하며, 간단히 아침을 먹고 룩셈 부르크 시로 이동했다.
우린 일정을 노트르담 대성당 앞 헌법광장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고, 헌법광장 안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려 했는데, 작은 놀이기구들과 푸드 트럭들이 위치해 주차장 입구는 막혀 있었다. 근처 법원 지하에 주차를 하고, 노트르담 대성당 쪽으로 이동했다. 고딕 양식으로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대성당의 3개의 첨탑은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으며, 내부는 르네상스 양식의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고 했다. 국가의 큰 행사나 대공작의 결혼식이 시행되는 공간이라고는 하나 항상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노트르담 대성당_Cathédrale Notre-Dame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 오픈 시간을 미리 확인 해 보니, 오후 2시까지 영업이었다. 지금은 12시 반이니, 미리 점심을 먹어야 했고, 구글 맵으로 타이 레스토랑을 찾아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니 직원이 여기는 이태리 식당이니 옆에 초밥 식당으로 가라고 한다. 아니, 난 타이 음식을 먹고 싶어 맵에 찍힌 타이 레스토랑으로 왔는데, 자기네 식당은 이태리 식당이니 옆에서 초밥을 먹으라는 건 무슨 논리일까? 맵에 식당의 분류가 잘못되어 있어 많은 아시안들이 방문을 한 것 같은데, 그 직원 말투가 맘에 안 들어 구글맵 평점 1에 내가 느낀 감정과 그 직원의 말을 적나라게 리뷰에 남겨 두었다.
아르메 광장_Place d'Armes
우린 점심을 다시 스페인 음식으로 결정하고, 미로처럼 이어진 시가지를 가로질러 레스토랑에 도착 해 이것저것 음식을 주문했다. 딸아이가 지루해하는 것 같아 유모차로 근처를 돌았다. 룩셈부르크 시가지 중심에 위치한 아르메 광장은 의자와 테이블로 가득 찼으며, 광장 전체를 사진에 담고 싶어, 여기저기에 서서 구도를 바꿔가며 시도해 보았으나, 맘에 드는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골목을 조금 더 돌다 아까 본 헌법 광장의 놀이기구들이 궁금해 황금 여신상이 높게 서있는 헌법 광장으로 이동했다. 사실 딸아이에게 놀이기구를 보여 주고 싶었는데, 이미 잠들어 있었다.
아돌프 다리_Pont Adolphe
헌법 광장 오른편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아치형 다리인 아돌프 다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1903년에 세워진 이 다리는 석조 아치 다리로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였고 다리의 축을 세우기 위해 땅을 파면서 고대, 중세 유적들이 대량 발굴되어 시공 과정에서 꽤나 애를 먹었다고 한다. 다리 바로 밑에는 자전거와 사람들을 위한 산책로가 있는데, 오늘 오후에 가볼 예정이다.
왼편에 우뚝 솟은 시계탑 건물은 은행이다.룩셈부르크시에는 약 30여 개국, 150개가량의 은행이 있다고 하는데, 과거 활황을 누리던 철강 산업이 무너진 이후, 금융 관련 세금을 면제해주며, 금융 기업들을 유치해 재빨리 금융 허브로 전환하였고, 기업의 법인세를 낮춰 다국적 기업을 대거 유치했다고 한다. 그 결과 룩셈부르크는 국민 1인당 GDP가 10만 달러 이상인 부국으로 성장했다. 헌법 광장에는 가이드 버스 및 귀여운 녹색 가이드 기차의 시작 포인트 이기도 했다. 지난번 방문 때 가족들과 이 귀여운 기차를 타고 시내를 돌며, 각 건물의 특성 및 역사 등 다양하고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랜드 두칼 궁전_Palais Grand-Ducal
우린 점심을 먹고 그랜드 두칼 궁전으로 이동했다. 룩셈부르크는 입헌군주국으로 대공작이 존재하며,
대공 궁전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은 시청으로 사용하다 1841년 궁전으로 바뀌었으며, 현재는 영빈관과 대공의 직무실로 이용된다고 한다. 건물에 깃발이 꽂혀 있을 때는 대공이 안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깃발 및 근위 병도 없었다. 나는 건물 앞에 서서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지붕, 창문,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창문의 디테일, 색이 칠해지지 않았지만 벽면에 양각으로 새겨진 다양한 무늬들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왕궁 바로 앞에 우유에 초콜릿을 직접 녹여 핫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게가 있었는데, 한인 분들이 남기신 리뷰가 너무 좋지 않아 시도해 보지는 않았다.
Panoramic Elevator of the Pfaffenthal
점심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알제트 강 옆 성벽을 따라 좀 걸었다. 성벽 위부터 저지대 시가지까지 이어지는 75 미터 높이의 현대식 엘리베이터를 처남은 본 적이 없다고 해서 걸어서 약 15분 정도에 위치한 그곳으로 향했다. 밖으로 길게 뻗은 철골 구조물의 끝자락에 위치한 유리 바닥은 아래가 훤히 보인다. 재 작년에 왔을 때만 해도 유리가 너무 깨끗해 무서워 발도 딛지 못했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밟았는지, 지금은 거의 불투명 유리가 되어 긴장감도 반감이 되었다. 난 고소 공포증이 있는지 건물 자체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고, 그 유리에 오르기 조차 힘들었지만, 우리 딸은 아직 거리 감각이 발달하지 않아 그런지 그렇게 높은 곳에 서있는데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돌프 다리_Pont Adolphe
난 아까 헌법 광장에서 본 아돌프 다리 밑에 산책로에 가보고 싶었다. 우리 딸은 자기도 걷고 싶은 듯, 유모차를 타지 않으려 했고, 종종걸음으로 몇 미터를 걷다가 엄마 아빠와 실랑이 끝에 울면서 유모차에 올랐다. 시가지를 다시 가로질러 도착한 아돌프 다리 밑 산책로는 생각보다 거리가 짧았다. 자전거 도로 두 줄과 보행자 도로가한 줄 있었고, 잠깐 자전거 도로를 침범해 사진을 찍고자 하면 금방 자전거나 나타나 종을 울려 댔다. 오늘 아침을 먹으며 유튜브로 룩셈 부르크 관련 영상을 보는 중에 이 산책로를 보았는데, 화면에 나오는 뷰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쪽 마을에서 찍은 것을 편집해 마치 산책로에서 운치 있는 마을이 보이는 것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역시 편집의 힘이란! 산책로는 신시가지로 연결되지만, 우린 그쪽에서 볼일이 없었기에 다시 돌아와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룬트 마을_Grund
이번 방문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룩셈부르크에서 볼 수 있는 절경이 있는데, 바로 보크의 포대이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이 포대는 보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963년에 요새를 지었고 중세인이 벼랑 끝에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성벽은 지금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졌다. 요새에서 밑으로 보이는 그룬트 지역은 알제트 강이 흐르는 안쪽으로 저지대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고, 나폴레옹이 유럽의 골동품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천년이 넘는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중세 마을의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마을 주변에 새로 세운 건물들은 과거의 중세 건축물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고 하니 룩셈 부르크 사람들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우린 오늘 딸과 함께 수영장도 가보기로 했으나, 날이 점점 추워지고 문 닫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 저녁을 먹기 전에 북쪽에 있는 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지도에는 삼림욕이라 적혀 있어 한국의 수목원 정도로 생각했으나, 룩셈부르크시처럼 성곽 밑에 마을이 위치 해 있었고, 성곽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기에 근처에서 사진만 찍고, 저녁 먹을 식당을 알아봤다. 마침 근처에 위치한 포르투갈 식당에서 처음 맛 본 포르투갈 식 문어 요리를 포함한 저녁을 먹고 숙소로 이동했다.
Larochette Castle
셋째 날
2박 3일이었지만 그동안 먹은 음식이 너무 질렸다. 매일 한식을 한 끼는 먹어야 해서 지난번엔 고추장을 챙겨 왔는데 이번에는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이틀간 먹은 음식들의 느끼함이 쌓이고 쌓여 아침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집 사람과 난 여행을 좋아하기에 작은 라면 포트도 가지고 있다. 되도록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숙소로 예약을 하지만, 가끔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할 때는 이처럼 일반 호텔로 예약을 잡고, 방에서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을 때 매우 유용하다.
어제 늦게까지 영화를 보느라 다들 늦게 잠을 잤기에 기상 시간이 늦어져, 아침을 먹고 빠르게 체크 아웃을 준비했다. 처남이 12시 반 기차로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하기에 조금 일찍 역 근처에 도착했다. 간단히 쇼핑을 하고자 했으나, 일요일이라 그런지 상점들은 전부 문을 닫은 채 마치 유령 도시 같았으며, 우린 날이 너무 추워 차를 마시러 카페에 들어갔다. 기차 시간이 15분 정도 남았을 때쯤 집사람과 처남이 차에서 가방을 꺼내려 갔는데, 주차장 입구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급하게 전화가 왔다. 헐레벌떡 뛰어가 주차권을 다시 긁어보고 비상벨을 눌러보고 했는데도 대답이 없다. 무작정 뛰어 차가 들어가는 입구에서 표를 새로 뽑고자, 버튼을 누르고, 전화벨을 누르며 발을 동동 거리고 있던 찰나, 주차장 게이트가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고, 주차장 관리요원이 불어로 뭐라고 설명을 했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알았다는 손짓을 하고 차에서 가방을 들고 쏜살같이 역으로 향했다.
무사히 독일에 도착하라며 처남과 인사를 나누고, 네덜란드로 출발했다. 돌아오는 길에 룩셈부르크와 벨기에 경계에 위치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세상에나, 기름 가격이 리터당 1.07 유로였다. 네덜란드는 현재 동네에서 기름을 넣으면 리터당 1.48유로 정도이고, 고속도로 근처는 리터당 1.62유로니 상당히 싼 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사실을 인지 했는지, 주유소 앞에 차들이 줄지어 있었고, 바로 옆에 위치한 마트에도 많은 사람 들로 북적였다. 벨기에를 지나며 맵에서는 내내 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메시지가 울렸고, 집사람과 돌아가며 운전하면서 무사히 네덜란드에 도착해 짐을 풀며 이번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