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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v i DK Aug 27. 2020

2020년 8월 19일

 

선반이 떨어지는 사고

특별한 아침이다. 간밤에 부엌에 있던 선반이 떨어지며 그 위에 올려두었던 냄비며 식자재들이 바닥에 다 내동그라졌다. 요즘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크게 놀라서 깬 뒤라 다시금 영 잠이 들지를 안았다. 와장창창. 댕그렁 쨍그렁. 요란한 소리에 크게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며 깼다. 요란한 소리와 비명 사이의 찰나에 스치고 지나간 상상에 마음을 여전히 조이고 있었다. 하나가 우리 모르는 사이에 부엌에 들어가서 뭔가를 만지다 도미노처럼 물건들이 떨어졌나? 하나를 덥쳤을까? 벌떡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달려가 불을 키고 나니, 울거나 다친 하나는 없었고, 그냥 물건들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있었다. 열어논 창문에 바람이 들이닥쳤나? 이건 어디서 떨어진거지? 잠이 덜 깬 몽롱한 상태라 단박에 상황이 판단이 서지 않았는데, 남편이 ”저 위에 밀가루랑 설탕단지를 안올려놔서 정말 다행이야!”라며 웃는 것이다. 올려다보니 반쯤 떨어진 선반이 대롱대롱 벽에 매달려 있었다. 드릴로 뜷은 구멍에서 선반을 고정하는 나사가 빠지지 않도록 잡아줘야하는 플라스틱 조각들이 어떤 이유였던간에 밖으로 흘러나왔던거다. 아래쪽 나사는 아직 버티고 있고, 위쪽 나사는 다 빠져있어서 벽에서 우선 선반부터 빼냈다. 


사실 짜증이 날 법 한 일이었는데, 하나가 안다쳤다는 사실, 남편이 무겁고 위험한 것 올려두지 말라해서 그런 것들은 다 내려돈 덕에 설탕 및 밀가루를 청소하느라 씨름할 일이 없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어이도 없기도 해서 너털웃음만 나왔다. 그리고 들어가서 다시금 잠을 청했는데, 통 잠을 잘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다시 들 무렵, 하나가 악몽이라도 꾼 듯 다급히 나를 불렀다. 가보니 깨진 않았고, 무서운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한 것 같았다. 땀에 흠뻑 젖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그냥 꿈이야, 진짜가 아니야.”란 말을 수 차례 반복한 후 발로 걷어차 침대 한켠에 뭉쳐진 이불을 끌어다가 아이의 몸에 덮어주었다. 


이렇게 새벽을 요란하게 보낸 터라 아침이 그닥 상쾌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간신히 일으켰고, 난장판이 되어있는 부엌부터 정리해야했다. 아이의 도시락도 싸야 하는데… 빠듯하긴 해도 안될 일은 아니겠지 했는데, 거실에서 남편과 애가 씨름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다. 뭐 하나 틀어지면 저리 가라고 외치며 짜증을 있는대로 부리는 거다. 애가 훌쩍 큰다는 원더윅스가 예전처럼 심한 형태로 오지는 않지만, 간간히 말을 덜 듣거나, 짜증을 쉽게 또 많이 부리는 시기는 여전히, 종종 찾아오곤 한다. 바로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이런 때 예전같이 짜증이 안난다는 점이다. 그냥 그러려니 한달까? 그냥 원래 애들은 그런거다 하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많이 수월해졌다. 


친구의 이혼

오늘은 내 마음 속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친구의 이혼 판결이 내려진 날이기도 하다. 이혼소송이라는 게 이렇게 질질 끄는 일인 지 몰랐는데, 새로운 출발을 하기 전 이렇게 진을 빼다니… 하는 마음이 반, 그래도 원하던 이혼 판결이 잘 나와줘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반이다. 이럴 때는 덴마크의 이혼절차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애가 없을 경우 온라인에 접속해 이혼 신고를 하면 바로 가능하고, 애가 있을 경우, 이혼에 대한 이견이 있을지라도 6개월의 숙려기간동안 혼인 파탄의 상황이 지속되면 그냥 이혼을 하게끔 해주는 절차가 깔끔하다. 그나마 6개월은 새로 생긴 조건이다. 이미 부부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싶으면 6개월도 길다 느껴진다. 


아이들도 부모의 관계가 결혼상태가 유지되는 것도, 이혼한 것도 아닌 불확실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보다 훨씬 안정된 틀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조건을 받아들이는 게 정서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건강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도 아이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대신 면접교섭을 하는 기간 중에 자신을 더 많이 내어주고 아이들을 사랑으로 흠뻑 적셔줄 수 있는 사람으로 바뀌길 바란다. 아이들 뿐 아니라 지금과 미래의 자신을 위해서.

하나도 요즘 부모의 이혼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부쩍 가지기 시작했다. 유치원 친구들 중 이혼한 부모의 집을 돌며 사는 삶의 형태에 인지를 하면서 생긴 일이다. 얼마전 유치원에서, 아이들 하나하나가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혼자 찾아서 유치원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다 대동하고 집으로 간 뒤, 집 대문 앞에서 독사진을 찍어 오는 투어를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인쇄해 유치원 벽에 붙인 큰 동네 지도에 콜라주처럼 붙이는 미술 프로젝트를 했는데, 몇 명은 집이 둘이라는 게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다. 그걸 여러 번 물어봤으니까. 게다가 마침 그 이혼한 가정 중 하나에 하나의 가까운 친구도 해당되었는데, 친구가 엄마와 아빠의 아파트를 돌아가며 살고, 다같이 만나서 식사도 하고, 여름 휴가 중 짧은 기간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이혼이 뭔가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사실 그냥 부모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혼을 하고 아이도 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걸 오히려 즐겁고 신나게 느낄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 혹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 부모의 이혼은 힘든 일일 수 있기에 그걸 마냥 즐겁고 신나는 일이라 인식하게 둘 수도 없어서 그걸 어떻게 중립적으로 설명하나 고민이 많이 된다.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고.

 

며칠 전에는 집에 와서 나에게 엄마랑 아빠는 이혼했다고 역할놀이를 하자는 거다. 그래서 ”엄마랑 아빠가 이혼하면 같이 못사는 데 좋아?”라고 물어보니, ”엄마랑 엄마 집에서 며칠 같이 살고 또 아빠랑 아빠 집에서 며칠 같이 살면 되지.”라는 거다. 아. 이런 관점에서 신나는 일인 거구나 싶었다. ”이혼은 엄마나 아빠 중 한명이 상대방을, 또는 두명 다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는 거야. 엄마랑 아빠는 계속 사랑해서 이혼 안할 거고.”라고 말해주긴 했는데 앞으로 한동안 이혼은 아이에게 중요한 토픽이 될 것 같다. 이혼이 나쁜 게 아니고, 필요할 땐 꼭 해야하는 것이지만, 이혼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일이기에 그걸 쉽게, 재미삼아 주제로 삼을 건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잘 설명하는 게 나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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