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v i DK Aug 28. 2020

2020년 8월 27일

하기 싫다고 거부하는 일을 강제로 시키기

간혹 심하게 떼를 쓰는 날이 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떼를 크게 쓰는 애는 아니지만, 떼를 쓴다고 하면 정말이지 너무 힘이 좋아서 다루기 힘들지경이다. 오늘 플레이데이트가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아이의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놀다 왔다. 볼로네즈 파스타를 한껏 먹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평소보다도 많이 먹고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 집 부모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 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미 피곤해서 그런지 신발을 신는 타이밍부터 뭐하나 작은 거라도 자기가 원하는 바에서 틀어지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오늘 유치원에서 야외활동을 하느라 걷기도 많이 했을 거고, 새로운 집에 가서 노느라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자극도 많았을 거다. 지금 나는 애의 훈육에 감정을 보다 배제하고자 의식적으로 더 노력하고 있는 터라, 그냥 그렇게 행동하면 안된다고 조용히 설명하고, 내가 해야할 일에만 초점을 맞춰 애를 안아 들고 차에 태워 집에 왔다. 


뭘 하더라도 삐딱선을 타는게, 차에서 내려야 되는 데 카시트에서 내리지 않고 자겠다고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는 둥 이미 집 안에서 전쟁을 한바탕 할 것 같은 예감을 불러일으켰다. 전조가 보였다고나 할까.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가서 손 씻는 일이 전쟁이었다. 손을 안씻겠다고 베란다에 쳐둔 자기 텐트로 쏙 들어가버렸다. 남편이 손부터 씻으라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도 따르지 않자, 애를 들쳐없고 화장실로 데리고 가고 있었다. 목욕은 안시키더라도 세수 시키고, 엉덩이, 손은 씻겨야 해서 옷을 벗겨야 하는데, 절대 협조하지 않겠다며 목욕탕 바닥에 드러눕는거다. 나는 올바로 행동하지 않겠다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면서. 


이제 우리도 한두번 한 일이 아니니 이력이 나지 않았겠는가? 내가 몸통을 딱 잡고 남편이 손과 얼굴을 씻기고, 남편이 양다리 부여잡고 내가 몸통을 잡고 엉덩이를 씻기고 몸에 물을 타올로 말렸다. 귀를 뚫고 갈 것 같은 날짐승의 포효같은 목소리로 자기가 씻겠다고 하는데 – 진작에 씻지, 다 씻기고 난 후에 또 이렇게 청개구리 짓을 한다. – 그걸 받아주면 또 난리칠 게 불 보듯 훤해서 방으로 들쳐없고 갔다. 


의외로 얌전히 속옷은 입었지만, 잠옷은 안입겠다고 또 반기를 들기에, 그 옷 입기 싫으면 그냥 누구 주겠다고 경고했다. 진짜 안 입으면 누구 줄 생각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옷인데, 그렇게 남 주고 나면 자기 손해지. 역시나 얼른 잠옷을 입었는데, 아직 분이 하늘 끝까지 뻗쳐서 식지가 않는 거다. 들짐승이 내는 으르릉 소리로 같은 소리를 음절 사이사이 끼워 넣으며 ”엄 으르렁 마 으르렁. 제 으르렁 손 으르렁 제 으르렁 가 으르렁… (엄마. 제 손 제가 다시 닦을 거예요!)” 이렇게 말을 하는데 남편이나 나는 너무 어이도 없고 뭐가 그렇게 분할까 싶어서 너털웃음이 나왔다. 나도 안다. 아직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이런 말도 안되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그 머리속과 가슴속에 어떤 감정의 소용돌이가 돌고 있는 건지 이해하고 싶어도 상상할 수가 없어서 우스운 것 뿐이었다.


마지막 관문인 양치질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다. 자기도 알기 때문이다. 강제로 양치질을 하는 게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님을. 힘은 힘대로 썼는데 피할 수도 없고, 우리도 우악스럽게 힘을 써서 아이의 턱을 붙들어야 하니 턱도 아플 게 틀림없다. 대부분 10초 안에 굴복하고 입을 열었지만, 그 저항을 참 많이도 했었으니 우리나 애나 이골이 난 전쟁이다. 그래서 더이상 양치질은 큰 관문이 아니게 된 것 같다. 


세살 반.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아직 훨씬 많은 나이. 해야하는 것은 해야하고, 해서 안되는 것은 하면 안되고, 하고 싶은 것도 하면 안될 게 많고… 그런 아이를 대상으로 우리는 감정을 싣지 않고 최대한 우리의 역할을 다하는 건데, 지금 여기에 오기까지 크고 작은 전투를 많이 치르면서 마음 속 갈등도 정말 많이 겪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이렇게 해도 되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갈등. 때로는 유치원 선생님의 조언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육아서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곤 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도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부정적 인센티브를 결부시킨 훈육 – 예를 들어, 이렇게 행동하면 네가 원하는 일들을 해 줄 수 없다든가, 재우러 들어갔는데 애가 자지 않을 때 지금 잠자리에 누워서 잘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엄마가 그냥 나가겠다는 것과 같은 부정적 인센티브 설계 – 를 어떻게 배제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다. 


나와 씨름을 해서 그런지, 오늘은 아빠가 재워주는 날이었는데도 꼭 엄마를 옆에 두겠다고 주장하여 우리 가족 셋 다 하나 방에 누워서 남편이 읽어주는 책을 들었다. 어른 둘이 누워 자리도 없는 매트리스에 엄마랑 같이 있겠다고 내 몸 위에 자기 몸을 겹쳐누웠는데, 솔직히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씨름을 한 뒤에 애와 살을 부비고 누우니 너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재워도 되는데, 자기가 덴마크어로 책을 읽어줘야하는 날이라며 우기는 남편을 보며, 남편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었다. 애가 어릴 때는 지금과 같은 수준의 감정교류가 어려웠던 탓에 내가 대신 애를 재우겠다 하면 냉큼 좋다고 바꾸고 나갔을 남편이었는데, 지금은 아이 재우는 게 너무 좋고, 중요해서 바꿔주지 않겠다니. 아무튼 그렇게 애는 잠이 들었다. 너무 피곤한 탓인지 7시 반에 재우러 들어가 9시 반이 되서야 잠이 들었다. 내일 고생하겠네. 오늘은 우리도 일찍 자야할 것 같다. 내일의 전투에 준비태세를 갖추려면…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8월 26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