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써내려 간 문장들

고향에서 쓰고 그리는 리틀 포레스트

by Je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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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고 고향에 돌아왔다.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타지에서 살았으니 무려 14년 만에 새로 꾸린 가정이 아닌 고향 집에서 일상을 보내게 된 것이다. 떠날 땐 혼자의 몸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는 무려 세 식구가 함께였다. 강아지 한 마리, 뱃속의 아이 그리고 나까지 말이다. 머리가 잔뜩 커져버린 서른네 살의 나는 강아지의 분리불안으로 인해 고향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시골의 할머니 댁에서 피치 못하게 생활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던 것만 같다. 아이를 품고 있는 열 달의 시간 중 서울에서 보낸 두 달은 춥고 분주했던 기억이 대부분이었지만 고향에 돌아와 보낸 나머지 시간들은 푸르른 녹음과 홍시 색의 노을을 가득 담고 있었다. 나는 덤벙대고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거니와 임신을 해서도 유난스럽게 무언가를 준비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이렇다 할 태교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시골에서의 모든 하루하루가 나에게는 태교라 부를 수 있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품고 돌아온 고향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했다.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땅은 거짓말처럼 녹아 만물을 품었고 할머니는 자연의 시계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산나물을 캐기 시작하셨다. 봄내음을 흠뻑 맡으며 나물을 뜯고 나면 매미가 매앰매앰하고 울었고 이른 봄에 묻어둔 씨앗들이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열고 빨갛고 푸른빛을 띠며 저마다의 속도로 익어갔다. 구슬땀을 흘리며 마루에 앉아 할머니와 쭈쭈바를 하나씩 물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장마가 왔고 흐리고 어두운 날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계절이 찾아왔다.

살면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덕분에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처음으로 장화를 신고 농사를 지으며 밥상에 오르는 것들을 가까이서 만나는 경험을 했다.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쭈그리고 앉아 일을 하다 보면 밥상 위에 오르는 식재료들이 무엇 하나 애틋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샛별이를 품고 할머니와 소중하게 기르고 담은 시간들은 그렇게 나의 글이 되었다.




샛별이라는 태명처럼 아기는 8월의 첫째 날 샛별이 채 떠오르기 전에 태어났다. 매일 시골의 논 길 사이에 난 작은 농로를 따라 산책을 하며 녹음 속을 열심히 걸었던 덕분이었는지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샛별이를 품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고향에 잠시 정착했다. 남편의 배려 덕분에 서울에 올라가지 않고 고향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된 지 백 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짬짬이 초록이 가득한 풍경을 산책하고 글을 쓰고 자연 속에서 자주 삶의 느낌표를 찾는다. 아마 한동안은 나의 작은 숲이 조금 더 울창해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