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레스트 _ 쑥
겨우내 웅크리고 있던 생명을 가장 먼저 틔워내는 존재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면 할머니의 거실은 자주 고요해진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서 원..”이라는 핑계를 대며 할머니는 오늘도 느린 걸음으로 집 뒤의 작은 텃밭으로 향하신 모양이다. 그날 오후, 할머니가 내게 쥐어준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새 봄을 가득 머금은 손톱만 한 쑥이 들어 있었다. 갓 자라나서 아기 피부처럼 연약하고 보송보송한 쑥을 손바닥 위에 올려 향기를 맡았더니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서 자주 맡곤 했던 봄 내음이 풍겼다.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계절의 향기, 시골에서는 자연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 냄새를 맡으며 계절이 옮겨가는 일을 알아차리곤 했다.
2월에서 3월 사이면 자주 비가 내렸다. 할머니 집 거실에 앉아 빗소리를 들을 때면 겨울이 가는 게 아쉬워 내리는 비라고 할머니는 자주 말씀하곤 하셨다. 할머니는 이 비를 기점으로 밭에 거름을 주고 고랑을 내고 비닐을 씌우고 씨를 심는 일을 결정했다. 채 따뜻해지기 전까지 할머니는 부지런히 일 년간 지을 농사의 채비를 하시는데 그에 앞서 제일 먼저 시작하시는 일이 바로 양지바른 밭의 비탈에 오밀조밀 자라나고 있는 쑥을 캐는 일이었다.
쑥은 햇살이 잘 드는 장소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라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 해를 보내고 또 이듬해가 되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자라는데 햇빛만 있으면 어느 불평도 없이 쑥쑥 자라난다고 해서 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일화가 있다. 심지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던 그 시절에도 가장 먼저 자라난 것이 쑥이라고 하니 그 생명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쑥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에 앞서 먼저 등장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의 생존과 번식력을 봤을 때는 충분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단군 신화에서도 곰과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는 이야기가 등장하니 쑥은 인류에게 오래전부터 친숙한 재료임에 틀림없다.
할머니는 사람이 밟고 다니지 않는 비탈의 쑥들을 주로 캐신다. 사람이나 짐승이 밟지 않은 아주 보송보송한 봄을 뜯어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일 테다. 바람이 여전히 차가운 와중에도 채 녹지 않은 땅을 비집고 나와 생명을 뿜어내는 쑥과 그들을 품고 있는 따스한 땅의 기운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재료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얼어있던 땅을 비집고 싹을 틔워낸 쑥은 어찌나 보드라운지 식탁에 올리기에도 무척이나 아까울 정도이다. 엄마는 첫 쑥을 받아다 늘 쑥 국을 끓여주곤 했다. 할머니 집 장독에서 담아온 집 된장을 후루룩 풀어 어린 쑥과 두부를 넣어 내면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한 상이 되었다. 가끔 출출해오는 밤이면 쑥 튀김을 해서 먹기도 하고 할머니 댁에 가면 하얀 면포에 멥쌀가루와 쑥을 올려 쪄낸 쑥버무리를 내주시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온통 풀뿐이라며 반찬투정을 하곤 했지만 한 해 또 한 해를 보내며 조금씩 어른들의 입맛을 닮아가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도시로 떠나기 전 나는 늘 고향에서 할머니가 보내주시는 봄을 가장 먼저 받아먹으며 자랐다. 몇 년 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할머니가 내주신 것도 소박하지만 따뜻한 봄의 밥상이었다. 인위적이고 고단한 마음으로 차려내는 밥상이 아닌 아끼는 누군가를 위한 한 끼의 소박하고 마음이 담긴 밥상 말이다. 그건 어쩌면 추운 겨울을 묵묵하게 견디고 나와 가장 먼저 봄을 피워내는 쑥을 닮기를 바란 할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