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시작을 부르는 이름 _ 달래

리틀 포레스트 _ 달래

by Jessie
겨우 내 잃어버린 식욕을 자극하는 달래

유년시절 우리 집 식탁은 늘 초록이 가득했다. 밭과 들에서 난 제철 식재료들을 할머니가 자주 보내주신 이유에서였다. 시장 보는 돈을 아끼라며 때가 되면 이런저런 작물들을 보따리로 만들어 쥐어주시는 할머니 덕분에 부모님은 십시일반 아끼고 아껴 우리 남매의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할머니의 논과 밭을 지날 때면 한 번 더 눈길을 두게 되는 것도 모두 그런 감사함 덕분이다.

할머니의 밭은 잡초가 뿌리내릴 틈 없이 상추, 배추, 고추, 깻잎, 토마토, 오이, 가지 같은 작물들이 열을 맞춰 늘 가지런히 자라났다. 할머니의 부지런함은 내가 살면서 봐온 사람들 중 제일이라 그런 할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나는 늘 동이 트는 시간부터 무얼 해야 한다는 은근한 강박에 시달리며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임신을 하고 이제야 조금 쉬어보겠다는 심산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면 까맣게 주름진 손으로 호미를 들고 밭으로 향하시는 할머니를 보니 나 역시도 부른 배를 안고 함께 밭으로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문득 콩나물 밥이 먹고 싶다던 나에게 엄마는 밭에서 싱싱한 달래를 뽑아오라고 했다. 콩나물 밥에는 달래로 만든 양념장이 최고의 궁합이라나. 장갑과 호미를 찾아들고 밭으로 가는 일이 조금 귀찮긴 했지만 뱃속의 아이에게 봄을 알려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어 어느새 할머니와 나는 밭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면기가 채 끝나지 않은 밭에는 겨우내 바싹 말라붙어 그대로 얼어버린 고사리 뿌리와 줄기들이 여기저기 뒤엉켜 지저분하게 잠자고 있었다. 생명을 잃어버려 온통 잿빛이 되어버린 더미들을 걷어내자 얇고 가느다란 싹이 보였다. 바로 달래였다.





달래는 산이나 들에서 난 것을 사람들이 캐다 먹는데서 시작되었다. 이른 봄에 싹이 나는데 다른 작물들이 채 자라나기 전에 캐지 않으면 주변의 풀들과 함께 자라나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여간 쉽지 않아 진다. 할머니 집의 달래는 봄에는 감나무 아래에서 싹을 틔워내고 여름이면 그늘 아래서 번식을 이어가곤 하는데 할머니와 함께 밭에 올랐다가 잡초를 매면서 하나 둘 발견되는 달래를 뽑아 간장 양념을 만들어 먹곤 했던 추억이 있다. 얼핏 보면 풀이라 생각할 만큼 조금 자란 잔디 모양을 하고 있지만 일단 캐보면 작고 동그란 뿌리에서 풍기는 봄내음이 아주 향긋하다. 이 뿌리를 아삭하고 씹으면 톡 쏘는 매운맛과 봄 향기가 겨울을 머금고 자라나는 것들이 얼마나 응집력 있게 자라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엄마가 끓여주신 봄의 된장국


쑥, 냉이와 함께 봄의 대표주자인 달래는 농촌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단골손님이다. 된장국 속에서 향긋한 풍미를 더해주기도 하고 살짝 데쳐 초고추장 양념을 찍어먹기도 하고 콩나물 밥의 간장 양념의 주 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두부가 들어간 말끔한 된장국이 먹고 싶은데 왜 매번 쑥이나 냉이, 달래 같은 것들을 넣고 끓이는지 늘 불만을 가지곤 했는데 집을 오래 떠나 있으면서 계절을 담은 밥상을 오래 만나지 못한 탓에 이제는 되려 다양한 봄내음이 담긴 된장국을 반가워하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봄내음이 그리워 마트에서 몇 번이나 나물을 들었다 놨다 했지만 고향에선 그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만원에 가까운 돈을 내고 사 먹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내려놓곤 했기 때문이었다.



시골에서는 ‘밥’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해서 손님이 오면 늘 끼니는 어떻게 했는지를 먼저 묻고 밥상을 차려내곤 하신다. 그래서 스무 해가 다 되도록 나 역시도 늘 아침을 챙겨 먹는 습관을 가졌고 또 그것이 중요하다 여기며 살았지만 서울에서 사는 동안에는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 아침밥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삶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원 지하철에 질려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냈던 경험이 있었기에 되도록이면 사람으로 빼곡한 지하철은 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레 아침밥을 포기하고 출근을 하기 시작했고 허기는 늘 출근길 편의점에서 삶은 계란과 커피로 채우며 살았다.





기계처럼 찍어내는 음식들로 어설프게 허기를 채우다 엄마 곁에 돌아오니 밥만 먹어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밥을 먹어도 늘 배가 고파서 서랍 속에 넣어둔 간식들로 출출함을 채우곤 했는데 엄마 곁으로 돌아온 뒤로는 허기를 느껴본 기억이 오래다. 고향에서는 시간이 유독 느리게 흐르고 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에서 살다 보면 영영 뒤처질 것만 같아서 쉬이 결정하지 못했던 귀향이었는데 막상 마주한 리틀 포레스트는 내가 꿈꿨던 딱 그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따뜻한 모습이다. 조금 더 일찍 돌아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 정도로. 고운 흙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콘크리트의 바닥과 하이힐보다 폭신폭신한 흙과 운동화가 어울리는 것을. 계절의 흐름을 오감으로 느끼면서 자주 일상에 쉼표를 찍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면서 느낌표를 찍게 되는 순간은 늘 느리게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인 것만 같다. 그리운 이에게 손 편지를 쓸 때,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바라볼 때, 봄 햇살을 받으며 산책할 때 그리고 소중한 이를 위해 요리를 할 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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